불행을 등에 업은 남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깡철이(유아인)일 것이다. 깡철이는 몸이 성한 곳이 없어 ‘부산의 헬렌 켈러’라 불리는 엄마(김해숙)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매일 막노동을 하며 엄마의 병원치료비를 구해보려 하지만 이미 빌린 돈을 갚기에도 역부족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깡철이를 걸핏하면 남편으로 착각하고, 종종 사고를 친다. 그래도 깡철이에겐 하나뿐인 혈육인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그러던 어느 날 깡철은 작업장 근처에서 조직폭력배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조직의 보스 상곤(김정태)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엄마의 치료비를 내주겠다며 깡철에게 제안한다.
여기저기 절박한 사람들 천지다. 유아인이 출연했던 과거 영화의 제목에 비유하자면 <깡철이>의 인물들에게 ‘내일’은 없다. 삶의 진창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영화는 조명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유일한 버팀목은 ‘가족’이다. 깡철이와 병약한 그의 엄마뿐만 아니라 깡철이의 친구 종수(이시언)와 그의 아버지(송영창), 깡철이의 주변을 맴도는 조폭 형제 상곤과 휘곤(김성오)은 각각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연이자 언젠가 벗어나고 싶은 가족이다. 그러나 <깡철이>의 인물들은 결국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삶의 아이러니와,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품는 사람은 없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이 영화는 전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에게 저마다 납득 가능한 사연을 부여하다보니 개별 에피소드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원활하게 봉합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일례로 부산을 무대로 하는 <깡철이>에서 유일한 타지 출신이며, 혈연도 없는 서울 여자 수지(정유미)는 효과적으로 영화의 인물과 상황에 녹아들지 못한다. 그녀의 사연을 풀기도 전에, 깡철이와의 관계를 보다 세심하게 조명하기도 전에 서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미덕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평범한 장면에서 찾아온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엄마가 김밥을 싸줄 때,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할 길 없으면서도 그 작은 행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깡철이의 모습이 뭉클하다. 오롯이 배우 김해숙의 엄마다움과 유아인의 풋풋한 매력에 기대어 전개되는 이 장면 같은 담백함을 영화에서 보다 자주 볼 수 있었더라면, <깡철이>는 좀더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