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벼랑 끝에서 한 선택 <벌거숭이>
2013-10-02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변두리 소도시에서 작은 구멍가게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가는 가족이 있다. 열심히 살아보려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다. 가장 일래(김민혁)는 걸핏하면 술에 취해 아내를 구타하고, 이제 겨우 예닐곱살이 된 아들 영수는 하루 종일 게임에만 매달려 살고 있다. 이런 가족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아내 유림(장리우)의 삶도 점차 황폐해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좀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일래는 급기야 전 재산을 담보로 택배 일을 해보려고 투자를 하지만, 결국 한푼도 남김없이 사기를 당하고 만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져버린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고,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밴쿠버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벌거숭이>는 벼랑 끝에 선 가장 일래의 ‘선택’과 그 선택이 가져온 삶의 변화를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보여준다. 그 전반부가 처절하게 망가져가는 한 가족의 삶을 끔찍할 정도로 리얼하게 담아냈다면, 후반부는 바닥까지 추락해버린 일래의 고난의 여정을 대사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지독한 악몽처럼 그려낸다. 이때 감독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미 더이상 추락할 곳이 없어져버린 일래의 영화 속 마지막 모습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 ‘플래시포워드’가 흥미로운 것은, 아니 끔찍한 것은 이것이 일래의 미래에 대한 암시라기보다 끝없는 업보의 반복 속에서 그에게 어떠한 구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일래의 절망을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는 눈여겨봄직하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 카메라는 그 누구의 감정에도 젖어들지 않은 채 그저 인물들을 지켜본다. 이 영화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오직 영화 틈틈이 흘러나오는 김두수의 구슬픈 노래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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