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다섯 남녀 <하리수 도색>
2013-10-02
글 : 김보연 (객원기자)

제복 페티시가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 메이리(테레사 청)는 업무차 매력적인 중년 여성 우메키 여사(마쓰자카 게이코)를 만난다. 우메키는 메이리에게 과거 자신이 살았던 집을 처분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집에 마음을 뺏긴 메이리는 자신이 이곳에 직접 살기로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남성 킴이 등장하고, 뒤이어 경찰 ‘4708’과 미모의 여성(하리수)까지 이 집을 차례로 찾아 메이리와 기묘한 관계를 맺는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일까.

9년 만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는 욘판 감독의 <하리수 도색>은 다섯명의 남녀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은 특유의 감각적인 화면 속에 실제와 기억을 번갈아 등장시킨 뒤 마지막에는 그 구분조차 지워버리며 사랑과 욕망에 몸을 맡긴 인물들의 위태로운 내면을 다룬다. 그런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공들여 형상화한 화려한 영상은 정작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즉각 시선을 빼앗는 독특한 세트와 색색의 조명, 흔들리는 카메라, 심오한 내용의 자막과 내레이션, 그리고 이국적인 음악의 남용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마는 것이다. 하리수를 비롯한 배우들이 아무리 열연을 펼쳐도 이 역시 과잉된 스타일에 묻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적 효과에 온 힘을 쏟다보니 안 그래도 엉성한 이야기는 길을 잃어버리고, 인물들의 감정 역시 증폭되는 것이 아니라 앙상한 겉모습만 남는다. 그렇게 영화는 자신이 만들어낸 화려함에 스스로 취한 채 마지막까지 공허한 이미지들을 나열할 뿐이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탐미적인 영상 속에 담아온 욘판 감독의 장기가 그 과감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안타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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