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DVD를 요청하려 제작사인 이닥픽처스에 전화를 걸었더니 박상훈 감독이 직접 수화기를 들었다. 박상훈 감독은 곧 DVD를 전달하겠다고 했고, 30여분 뒤 직접 DVD를 들고 <씨네21> 사무실을 찾았다. 인터뷰 당일엔 자신이 작성한 보도자료를 들고 30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각본, 촬영, 헌팅, 연출은 물론이고 배급과 마케팅까지 손수 관장하고 있는 박상훈 감독은 <벌거숭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한 듯 보였다. 아내와 아들을 제 손으로 저세상에 보낸 한 가장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뫼비우스 띠에 갇혀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이야기인 <벌거숭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벌거숭이가 된 박상훈 감독을 만났다.
-존속살인을 저지른 박일래라는 인물을 따라가는 영화다. 어떻게 구상한 이야기인가.
=4년쯤 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서 광인처럼 살다가 무작정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서 ‘마을 영화’도 찍고, 낚시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려가기 시작했다. 존속살인이라는 극단적 소재를 가져오긴 했지만 몸담고 있던 공동체를 붕괴했던 내 과거 행적에 대한 반성으로, 반성문을 쓰듯 <벌거숭이>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내 경험이 영화에 많이 담겨 있다. 엔딩에서 박일래가 오열하며 두부 먹는 장면도 실제 내 경험을 옮긴 거다.
-부부관계 묘사나 공간 묘사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상황극을 찍듯이 촬영 환경을 만들어나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부부의 집도 헌팅하다 찾아낸 게 아니다. 촬영을 위해 충남 서산쪽에 일단 자리를 잡았다. 서산 부근을 돌아다니다 허름한 외관의 그 집을 발견했다. 문을 열어보니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폐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집 사람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이곳에 가족 셋이 살았는데, 그 가족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더라. 소름이 돋았지만 스탭들을 불러서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배우들 옷도 거기 있던 옷을 빨아서 입힌 거다. 현장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디테일이 형성된 것 같다.
-싱크대에 오줌 누는 남편을 타박하는 아내의 모습도 재밌었다.
=그건, 우리 아버지가 실제로 종종 그러셨던 걸 영화로 표현해본 거다. (웃음)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측정하기 힘든데, 2천만원 정도 들었지 싶다. 찍다가 돈 떨어지면 쉬고, 돈 벌면 또 찍고 그렇게 2년 동안 촬영했다. 스탭도 어떨 땐 10명이었다가 어떨 땐 혼자였다. 사실 배우가 많이 힘들어했다. 2년 동안 박일래라는 캐릭터로 살 수밖에 없었던 배우 김민혁은 정신적으로 몹시 피폐해졌었다. 나중엔 서로 오기가 생겨서 ‘우리에게 중도 하차는 없다. 오늘 하루 0.5cm라도 나아가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찍었다.
-영화를 하기 전 그림을 그렸다고 했는데.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다. 스무살 때 어느 문예아카데미에 들렀는데 거기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너 관상 참 좋다. 여기서 청소하면서 아카데미 수업 다 들어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작가나 화가들을 알음알음 만나게 됐고 그림도 그리게 됐다. 그러다 수중에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영화로 갈아탔고.
-독학 인생이다. 역시나 <벌거숭이>의 배급/마케팅도 직접 도맡아 하고 있다. 6개월 동안 발로 뛰며 극장을 잡았다던데, 상영관 수가 적지 않다.
=처음엔 한곳도 못 잡을 거라 생각했다. ‘망했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배급할 땐 나름 사회생활이란 걸 해야 하는데, 사회화가 덜된 놈이라…. (웃음)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 되더라. 지금은 내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도 생긴 것 같다.
-차기작도 직접 배급할 생각인가.
=그러지 않을까. 시골에 있으면서, 밭에서 직접 기른 농작물을 직거래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왠지 모를 감동이 있더라. 그것과 비슷하게, 요만한 내 창작의 텃밭에서 직접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관객과 직거래하고, 거기서 생긴 여유자금으로 다시 텃밭을 가꾸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