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2005)의 선우(이병헌)가 강 사장(김영철)에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었던 것처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의 화이(여진구)도 아버지(라 불리는) 석태(김윤석)에게 묻는다. “아버지, 왜 절 키우신 거예요?” 자신의 과거도 모른 채 여러 명의 아버지들에게 길러진 화이는, 어느 순간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지구를 지켜라!>(2003)로부터 무려 10년, 장준환 감독은 그로부터 멀고도 또한 가까이 다시 한번 ‘소년’의 혹독한 성장담을 그린다. 애타게 신작을 기다려온 <지구를 지켜라!>의 컬트 팬들과 새로운 젊은 관객 사이에서, 그리고 장르적 컨벤션과 변칙 사이에서 장준환 감독은 자신의 위치를 어디쯤 두었던 것일까. ‘화이를 지켜라!’라는 마음으로 긴 시간 <화이>를 매만져온 장준환 감독을 만나 물었다.
데뷔작의 눈부신 재능은 오랜 세월 어떻게 단련됐을까. <화이>에 쏟아지는 관심은 무엇보다 <지구를 지켜라!> 이후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라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계에서 <지구를 지켜라!>는 진정한 의미의 ‘컬트’영화로 대접받았다. SF와 현실의 기묘한 결합이면서, 스릴러와 멜로를 오가며 자유분방한 호흡을 보여줬던 <지구를 지켜라!>는 장준환이라는 이름을 한국 영화계의 이른바 ‘문제적 감독’으로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그 사이에 그는 다시 신하균과 함께 단편영화 <털>(2004)을 만들었고, 온전한 멜로드라마의 화법으로 옴니버스영화 <카멜리아>(2010)에 참여했으며, <타짜>(2006)의 속편으로 기획된 <타짜 리벤저>를 준비하다 무산되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2006년 그는 배우 문소리와 결혼을 했고 드디어 아버지가 됐다. 한 감독의 세계관과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10년간 그에게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이라면 아마도 그것일테다. 한편으로 그 장준환의 10년을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타짜 리벤저>가 예정대로 제작됐다는 가정하에,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신하균), <타짜 리벤저>의 고니, <화이>의 화이로 이어지는 장준환의 ‘소년 3부작’이라고. ‘나는 누구일까?’ 하는 물음으로부터 혹독한 성장통을 겪는 소년들의 이야기, 바로 <화이>가 <지구를 지켜라!>와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그 모든 것들은 ‘성장영화’라는 테마로 엮이는 게 아닐까. <화이>는 어딘가 <지구를 지켜라!>의 프리퀄처럼 느껴진다. 병구의 지워진 10대에 대한 추적이랄까.
고립된 아이와 다섯 아버지
지하실에 내버려진 아이는 매일 밤 자기를 공격하려 드는 늑대의 환영과 함께 자랐다. 화이는 바로 범죄자 집단에서 길러진 아이다. 냉혹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 석태(김윤석), 범죄를 설계하는 브레인인 진성(장현성), 말을 더듬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기태(조진웅), 총기를 전문으로 다루며 말수가 없는 범수(박해준), 야비해 보이는 냉혈한 동범(김성균), 그렇게 5명의 남자를 ‘아빠’라 부른다. 유독 무서워 보이는 석태에게만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고 발에 쇠사슬을 찬 채 집 안에만 가둬진 엄마 영주(임지은)가 있다. 화이는 그들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그 과거를 알지도 못한 채 자라왔다. 평소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늘 교복을 입고 다니지만 그것은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다 화이는 우연히 알게 된 소녀 유경(남지현)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화이가 아버지들처럼 강해지기를 바라는 석태는 범죄현장으로 화이를 이끈다. 재개발 공사현장에서 이른바 ‘알박기’를 하고서 퇴거할 생각이 없는 집의 가장 영택(이경영)을 죽이기 위한 범죄다. 그런데 그 범죄현장에서 화이는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단서들을 발견한다. 이제 화이는 ‘영택과 석태는 무슨 관계일까’, 또 ‘나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을까’, 범죄에 가담하면서 갑작스레 돌출된 그 질문들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사실상 화이는 세상에 없는 아이다. 유경이 “어느 학교 교복이니?”라고 묻지만 답할 수 없다.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약간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해를 품은 달>의 어린 이훤(여진구)과 <선덕여왕>의 어린 덕만 공주(남지현)가 21세기 교복을 입고 만난 느낌 자체가 일단 괴상하다. 화이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들의 범죄 기술을 익히며 키워졌을 뿐이다. <화이>는 그렇게 과거를 모른 채 키워진 아이가 세상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속’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교복을 입고 있지만 사실상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기이한 모순, <화이>가 온갖 역경을 지나 조금씩 다가가는 뒤틀린 진실의 실체도 그러하다. 그 실체를 향해 나아가던 첫 번째 범죄의 순간, 화이는 두려움에 떨며 ‘괴물이 보였어요’라고 말한다. 그처럼 범죄에 가담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석태는 “우리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해!”라며 강압적으로 이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지하실에 틀어박혀 살던 병구만큼이나 화이도 고립돼 있다. 두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는 바로 ‘고립된 아이’다. <화이>는 사건 전개와 인물 구성에 있어 <지구를 지켜라!>와 큰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성장영화’라는 특유의 테마를 더욱 집요하게 파고든다.
지난 10년간의 한국 하드보일드영화들의 흔적
<화이>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리더 석태가 이끄는 범죄 집단을 좇는다.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냉혹한 집단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르적으로 연출된 케이퍼 무비의 전형적인 도입부를 이룬다. 마치 ‘지존파’ 혹은 ‘막가파’를 연상시키는 그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내부의 그 누구도 권위를 부정하지 못하는 강한 리더가 있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브레인도 있으며, 사건을 괜히 크게 만드는 말썽쟁이도 있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좋은 멍청이도 있다. 언젠가 배신할 것처럼 느껴지는 야비한 눈을 가진 이도 있다. 뭐랄까, 장준환 감독은 마치 <지구를 지켜라!>의 속편을 10년이나 기다려왔을 ‘특정한’ 팬들을 따돌리겠다는 듯 큰 걸음으로 장르의 컨벤션을 재빠르게 밟고 지나간다. ‘이전 작품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따라오지 말라’는 선언일 수도 있고, ‘이제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귀여운 허세일 수도 있다. 어쨌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화이>의 도입부는 분명 새로운 관객과 접속하려는 장준환 감독의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석태를 비롯한 5명의 범죄자들을 아버지라 부르는 화이의 유별난 처지가, 영화의 수많은 인물들과 곁가지 사건들을 이탈하지 못하게끔 팽팽한 구심력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성장영화라는 테마를 넘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새로운 관계, 아니 새롭다기보다 오히려 식상하다고도 할 수 있는 테마가 자리해 있다. 그러니까 <화이>의 승부처는 바로 거기다. 내가 온전히 서 있을 수 없는 엄청난 격랑을 겪더라도 일말의 진실을 들여다보고야 말겠다는 소년의 의지가 스릴러 액션 장르의 공식을 빌려 직진하는 것이다. 거기서 <화이>는 <올드보이>(2003)와 <추격자>(2007)가 한쌍을 이루는 지난 10년간의 한국 하드보일드 장르의 계보를 듬성듬성 콜라주한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 혹은 이후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품들의 흔적이 짙게 느껴진다. 부모, 자식간의 천륜(天倫)마저 장르의 소재로 취하는 양상은 <올드보이>를 떠올리게 하고, 수제 총을 제작하는 모습은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굳이 <화이>를 <지구를 지켜라!>의 프리퀄로 보자면, <화이>에서 어머니를 연기한 임지은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의 누나였다. 또한 김윤석은 그 자체로 <추격자>와 <황해>(2010)의 장르성을 관통하고 있는 배우다. 지난 몇년간 충무로에서 소문난 시나리오였던 <화이>를 접한 많은 이들의 중평은, 지난 10년간의 한국 하드보일드 장르에 대한 ‘효율적인 집대성’이었다. 물론 ‘누군가가 잘만 만든다면’이라는 단서와 함께.
덜컹거려도, 앞으로 앞으로
<화이>는 장준환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적극적으로 콜라주한 것 같은 영리한 배열의 영화다. 하지만 그 콜라주에는 다소 과잉으로 느껴지는 면도 보인다. 문성근과 유연석이 끌어가는 배경으로서의 더 큰 ‘조직’의 실체가 다섯 아버지들과 비교해 선명하지 못하고,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신의 한수’가 되어야 할 김영민이 연기하는 형사는 <지구를 지켜라!>에서 이주현이 연기한 형사처럼 역할에 비해 평범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화이>는 묘하게도 아버지와 아들의 기이한 관계라는 선 굵은 대결 구도 안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수많은 영화들을 지나 <아저씨>(2010)의 원빈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의 김수현처럼 ‘슈트 입고 액션하는 청춘스타’라는 컨벤션도 <화이>에 이르러 어딘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안착한 느낌이다.
이제 석태로 다가가서, 맥거핀인지 뭔지 분석 자체가 무의미한 <지구를 지켜라!>의 ‘외계인’처럼 <화이>의 ‘아버지’도 끝까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하고 강력한 존재다. 그를 꼼수로 비켜가지 않으며 연출상 어딘가 발을 헛디딜지언정 정면승부하고 있다는 점은 장준환 감독 특유의 순진한 집요함을 느끼게 한다. 설정부터 ‘아무리 고쳐 써도 절대 청소년 관람가가 안 나올 것’이라는 것은 시나리오를 읽어본 모든 사람들의 당연한 평가였기 때문이다. ‘어쨌건 두 번째 영화에서는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순진하게 말해온 감독이 어처구니없게도(!) 청소년 관람불가 이야기에 꽂힌 것이다. 그래서 제작발표 당시 ‘역시 장준환!’이라는 이도 있었고,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화이>는 상업적으로 처참한 실패를 겪었던 <지구를 지켜라!>를 벗어나겠다는 장르적 의지와, 그럼에도 자신의 고유한 테마를 더욱 깊이 다뤄보겠다는 어딘가 불가능해 보이는 작가적 의지의 충돌이다. 군데군데 덜컹거리지만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장르와의 합일과 그로부터의 이탈, 일단 <화이>는 그렇게 비좁은 경계 위에서 해묵은 것들의 답습을 넘어선 꽤 매력적인 결과물이라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