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필립스(톰 행크스)는 평범한 가장이자 평생 컨테이너선을 몰아온 베테랑 선장이다. 오늘도 그는 구호물자를 가득 실은 앨라배마호를 이끌고 바다로 나서는데, 소말리아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해역을 지나던 중 우려했던 대로 공격을 당한다. 다행히 그와 선원들은 지혜롭게 대처하여 해적들을 배 밖으로 몰아낸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으니, 그가 해적들과 함께 구명보트에 올라야 한다는 것. 투철한 책임감을 자랑하는 그는 자청해 구명보트에 오르고, 구조의 손길이 올 때까지 침착함을 유지한다. 곧 현장에 도착한 미 해군은 총 몇 자루가 전부인 소말리아 해적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소탕 작전을 펼친 끝에 그를 무사히 구출해낸다.
이것은 2009년 미 화물선 ‘머스크 앨라배마’호가 소말리아의 해적에 납치당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러니 기승전결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여기에 어떻게 긴박함을 불어넣을 것인가. 영화는 위기에 빠진 인질, 필립스 선장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택한다. 현명하고 가족적인 미국적 소영웅에게 악질적인 소말리아 해적들이 계속해서 총을 들이대며 자칫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가쁘다. 거기다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제작진은 그 국면을 잘게 나누고 시급하게 붙여낸 화면으로 현장을 ‘중계’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다. 필립스 선장을 거의 자포자기 직전까지 몰아세웠다가 미 해군이 간발의 차이로 해적들을 제거하도록 하는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이 미국판 ‘아덴만의 여명’은 잘 만들어진 액션스릴러물로 소비된다.
이 액션스릴러영화의 작전을 무력화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미 해군의 위기상황 대처 ‘매뉴얼’ 같은 전개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상의 시나리오뿐이다. 누구든 해적에 잡혔을 때 필립스 선장과 그의 선원들처럼만 대처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 해군도 어떤 내부 갈등 없이 매끄럽게 작동하는 기계처럼 그려진다. 미 해군의 전폭적 지원 아래 전체 분량의 75%를 실제 해상에서 찍은 만큼, 자타의적 검열이 작동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 밖 세계에 대한 위기의식의 부재다. 필립스 선장이 비쩍 마른 해적과 짧은 대화들을 주고받는 동안, 아프리카의 가난을 가속화하는 세계 경제,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국가체제에 대한 공포와 근심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하지만 영화는 그 순간들을 못 본 체하며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래서인지 영화도 관객도, ‘저’ 위험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게 된다. 열심히 위험에 빠져보려 한 이 영화가 안전하게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