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줄리엣 비노쉬)은 파리 근교의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1915년 2월부터 아비뇽 부근의 요양원으로 강제 이송된다. 원제인 ‘1915년의 까미유 끌로델’이 이르듯 영화 <까미유 끌로델>은 이 시기의 그녀에 주목한다. 연인 로댕과 관련한 일화는 배제되며,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서의 며칠간이 기록될 뿐이다. 까미유는 조각된, 특히 로댕과 관련된 일을 생각할 때면 편집증적 발작증상을 보이는 환자다. 그녀가 요양소에서 하는 일이라곤 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등 일상적 행동이 전부다. 매우 평이한, 그래서 더 기괴해 보이는 일상을 영화는 천천히 뒤따른다. 특별할 것 없는 날들 사이, 남동생 폴 끌로델(장 뤽 뱅상)이 면회 올 것이란 소식이 들린다. 이후 그녀는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유명 작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동생 폴은 누이의 처지보다는 자신의 믿음이나 명성, 사회적 성장에 관심이 더 많은 듯 보인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의 시초는 줄리엣 비노쉬의 음성메시지였다고 한다. 그녀가 먼저 브루노 뒤몽에게 전화를 했고, 이후 비전문 배우들과만 작업하던 뒤몽이 비노쉬를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다. 일종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인 셈이다. 때문에 비노쉬와 동년배 시절의 까미유 끌로델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촬영 역시 정신병원에서 실제 환자들을 기용해 이루어졌다. 감독의 이전 스타일처럼 이번 작품 역시 미니멀하고 건조하다. 인물을 발가벗겨서 화면 가운데에 내던지며, 회색의 메마른 나뭇가지를 보는 듯 서정적 색깔을 찾을 수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자벨 아자니가 출연한 영화 <까미유 끌로델>(1988)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겠지만, 뒤몽이나 비노쉬의 팬들에겐 큰 선물이 될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의 클로즈업은 칼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1928)을 상기시키듯 신성하고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