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디자인 인생 60주년 기념 전시회 <노라노>
2013-10-30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한국 1세대 디자이너 노라노의 인생을 반추하는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한국 패션의 역사뿐 아니라 대중문화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즐거움을 준다. 아직도 속눈썹을 붙이고 다니는 86살의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는 패션을 대중화하려는 자신의 원칙을 평생 고수했다. 1928년 경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복한 유년을 보내며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혼을 했다 이혼한다. 그 뒤 줄곧 홀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 풍파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노라노가 일을 시작한 1950년대 한국에는 패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런 시절에 옷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옷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대중문화의 향방을 좌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라노의 인생은 영화 같다. <노라노>는 패션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관람하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평생을 외길로 살아온 노라노의 삶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녀의 의상을 통해 1950~60년대 한국 영화사, 대중 음악사의 면면을 살펴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노라노>는 노라노의 디자인 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시 제목은 장밋빛 인생이라는 의미의 ‘라 비앙 로즈’로 결정됐다. 당사자인 노라노는 후배들이 추천한 그 제목이 탐탁지 않다.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세상에 뛰어든 이후 바늘과 가위에 찔리고 베인 60년 세월이 장밋빛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60주년 전시는 훌륭히 마무리되고 노라노도 스스로의 인생에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지난 세월이 장밋빛이었다고 인정한다. 전시를 위해 고객들에게 수백벌의 의상을 기증받았고, 젊은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끝에 노라노의 디자인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됐다. 최은희, 엄앵란, 최지희, 윤복희, 펄시스터즈 등의 배우와 가수를 비롯해 노라노의 오랜 고객이 영화를 위해 기꺼이 증언해주고 전시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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