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유부녀와 고교생의 역원조교제 <녹색의자 2013: 러브 컨셉츄얼리>
2013-10-30
글 : 정예찬 (객원기자)

34살의 문희(진혜경)는 화가가 되려고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지금은 입시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이혼해주지 않는 남편과 별거한 채 오랜 연인인 인규(박선준)와 사제지간 이상의 관계를 가져온 윤 교수(배장수) 사이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살아간다. 한편 그녀의 학생인 19살의 주원(김도성)은 수업시간마다 문희의 얼굴을 그리며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지금의 만남을 운명적이라 고백하며 끈질기게 사랑을 갈구하는 주원.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장난 같은 대화 가운데 문희는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둘은 헤어나올 수 없는 탐닉에 빠져들게 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박철수 감독의 유작이며, 유부녀와 고교생이 역원조교제를 이유로 국내에서 최초로 구속됐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녹색의자>(2003)를 박철수 감독이 스스로 리메이크했다. <녹색의자>는 당시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과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주목을 끌었다.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한 뒤의 관계 위주로 담아낸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은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비교해서 봐도 좋고, 서로 다른 영화로 떼어놓고 관람해도 좋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다”라는 사실을 공표하고 시작한다. <녹색의자> 개봉 당시에는 일탈의 소재를 옮겨낸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관계는 파격적이지 않으며 두 주인공의 만남에서도 애절함이 전해지지 않는다. 박철수 감독은 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다룬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하지만 의도와 결과는 꼭 일치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통해 문희를 관찰하는 관음의 시선만이 인상적으로 남을 뿐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