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영화 <화이트 고릴라>는 세상에 단 한 마리뿐인 고릴라 스노우의 모험을 그린다. 1966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스노우는 온몸의 털이 하얀색이라서 고릴라 가족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다가 결국 사냥꾼에게 잡혀 스페인의 동물원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한 스노우는 결국 자신의 털 색깔을 바꿔줄 마녀를 찾아 동물원을 탈출한다. 한편 스노우의 심장으로 행운의 부적을 만들려고 하는 악당은 스노우의 뒤를 쫓고, 스노우의 유일한 인간 친구 폴라는 스노우를 위기에서 구하려 한다. 과연 스노우는 자신의 목숨도 지키고 털색깔도 바꿀 수 있을까.
온몸이 하얀색인 고릴라가 자신의 털 색깔을 바꾸기 위해 마녀를 찾아가고 미신을 믿는 악당이 그 고릴라의 심장을 뺏으려 한다면, 게다가 자신이 흑표범이라 믿는 레서판다가 등장하며 이 모든 이야기가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을 통해 펼쳐진다면 <화이트 고릴라>를 유치한 아동용 영화로 쉽게 단정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아동용 영화라도 <화이트 고릴라>는 수준이 낮고 미숙한 것과는 거리를 둔다. 특히 다양한 동물과 인간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이 캐릭터들이 전부 자신만의 목적을 갖고 움직이게 만드는 탄탄한 이야기 솜씨는 인상적이다. 또한 자신이 조금 다르다고 억지로 남들의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과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영화의 주제 역시 지루한 설교 없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그러니 아동용 영화라는 선입견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실제 인물과 연기하는 데서 오는 거부감만 걷어낸다면 스노우의 모험을 즐겁게 따라갈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감점 요소는 시대 설정까지 비껴가며 최신 유행어를 남용한 한국어 더빙이다. 성우들의 우수한 연기를 끌어내고서도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영화의 완성도가 높았기에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