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씨네21>은 ‘충무로 신세대 팔팔통신’ 특집에서 김주환 감독을 만났다. 감독이 아닌 쇼박스 홍보팀 직원으로였다. 1년 뒤 다시 근황을 물었을 때 그는 “직접 영화를 연출할 꿈도 꾸고 있다”고 했다. 그가 바람대로 감독이 됐다. 촬영, 미술, 무술 등 현장 스탭이 연출을 하는 경우는 더러 봐왔지만, 배급사 직원이 연출을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회사를 휴직하고 만든 <코알라>는 대기업 직원 동빈(박영서)과 배우 지망생 종익(송유하)이 함께 수제햄버거 가게를 창업하고 겪는 우여곡절을 뼈대로 삼았다. 트렌디하고 발랄해 보이는 포장 안에 젊은이들의 고민을 한껏 녹여낸 작품.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뒤 10월24일 개봉했다.
-영화 속 ‘버거보이’가 개발한 차돌박이 수제햄버거는 상품화해도 될 것 같던데.
=식욕은 공통적인 관심사니 쉽게 통할 수 있겠지 싶었다. 나는 햄버거 개발 과정이 영화 만드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햄버거 패티를 공급받아 쓰다가 자극적인 ‘스팸’을 넣어서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것을 개발하는 것처럼, 영화 만들기도 점점 자기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햄버거 사업은 십년 전 함께 배우를 꿈꾸던 두 친구의 두 번째 도전이다. 20대 청년의 추상적인꿈과는 다른 현실적 도전이다. 이 영화가 ‘청춘영화’의 카테고리로만 국한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업을 하는 사람들 중 70%가 폐업을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프랜차이즈업주도 많은데, 취재를 하다보니 이들 중 상당수가 업체들의 일방적인 요구로 갖은 피해를 보더라.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고단하게 사는 이들이 보면 와닿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만취한 상태의 ‘꽐라’를 코알라에 비유한 게 귀엽다. 술이 인물들의 고충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상쇄해주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정서가 채플린 영화 같은 거였다. 우스꽝스럽지만 슬픈, 그런 충돌을 표현하고 싶었다. 술을 마시고 울고 웃는 모습들이 결국 끝으로 가면 이런 역할을 해준 게 아닌가 싶다.
-동빈은 대기업 직원이었고, 종익은 월세가 꽤 나가는 강남의 복층 오피스텔에서 산다. 이들 모두햄버거 사업에 절박하게 뛰어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절대적 가난은 아니다. 그 정도 월세를 내고 살면 꽤 잘사는데 뭐가 문제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절대적 가난보다는 뭔가 해보려는 데서 오는 좌절이 더 큰 것 같다. 이들이야말로 잃을 게 더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쇼박스 직원이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영화가 안되면 되돌아가면 되는 그런 도전이다. (웃음)
=그래서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영화를 하면서 영어 강사로 돈을 벌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2개월간 휴직 처리를 해주고 원래 근무하던 홍보팀 대신 한국영화 투자팀에서 근무하라고 하더라. 출산휴가를 제외하고 이렇게 긴 휴가는 처음이다. 휴가 때 촬영하고 편집은 복귀하고 주말에 했다.
-회사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건데.
=주변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인물도 별로 없고 웃음도 없고 상업적이지도 않다는 평가였다. 그래도 맘대로 했다. 난 내 영화에 자부심이 있다. 좋은 배우들과 스탭도 알음알음 만나고 구해서 완성한 영화다. 워낙 저예산이고 영화가 가진 따뜻한 체온이 있으니 통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전부터 단편 작업도 해왔다.
=시나리오는 2003년부터 써왔다. 원래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어서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다 조지타운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는데, 공부 안 하고 영화 보고 소설 읽고 그랬다. 학과 수업이 신학, 철학, 인문학들이라 결과적으로는 영화를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현실화하는 회사 업무와 연출자로서의 입장이 부딪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영화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직접 알게 되니 연출자에게 100% 서포팅이 가능해졌다. (웃음) 가끔 기획개발자의 입장인지, 연출자 입장인지 정체성의 혼란도 있다. 안 그래도 회사에서 “네가 회사원이냐 감독이냐”고 혼나기도 했다. (웃음)
-다음 작품도 구상 중인가.
=다시 영화 찍는다고 하면 회사에서 잘릴 것 같다. (웃음) 작품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영화 만드는 게 무척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