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예측할 수 없는 ‘리얼 라이프’
2013-10-3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EBS 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장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 감독

기술로부터의 자유가 새로운 연출의 가능성을 열었다.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의 심사위원장인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에게 꼭 맞는 말이다. 그가 직접 고안한 ‘싱글 숏 시네마’ 기법이 2005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의 <달의 형상>, 2011년 심사위원특별상의 <내 별자리를 찾아서>에 이어 최근 <북해의 청어잡이>에서도 경이로운 영상미와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성취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단, 여기엔 전제가 붙는다. 기술은 “대상에 자유롭게 다가가 교감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 기술과 서사의 상보적 조응에 누구보다 기민하게 반응하는 그를 만났다. 도전적인 행보만큼 그에게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확신의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 EIDF의 슬로건이 ‘진실의 힘’이다.
=굉장히 강력한 슬로건이다. 경쟁작들 하나하나가 상당히 힘이 있고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결정이 쉽지 않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실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영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극영화보다도 다큐멘터리가 극적일 수 있는 이유이고 그것이 곧 다큐멘터리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싱글 숏 시네마’ 기법을 창안했다. 본인의 다큐멘터리에 어떤 전기를 마련하게 됐나.
=혹자는 이 기법을 두고 대상을 한번에 찍고, 한 신 안에 모든 걸 담아내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핵심은 전체로서의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 대상의 전체를 온전히 담아내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한번에 담는 게 내 목표다. 내게는 신을 끊어가느냐 마느냐와 같은 기술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 경험들을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이 방법이 다큐멘터리에서 현실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찍는 대상과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옴니리그(OmniRig)라는 촬영기구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인가.
=그렇다. 이미 그 이름을 쓰는 곳이 있어서 곧 옴니플로(OmniFlow)로 변경할 예정이다. ‘흘러가고, 흘러간다’는 의미에서 이 말이 내 의도와 더 잘 맞는 것 같다. 기존의 스테디캠을 발전시켰다고 보면 되는데, 여러 명의 카메라맨이 한대의 카메라를 이어받아 찍다보니 자연스레 싱글 숏 시네마 기법이 접목된다. 이걸 통해서 (부분 부분이 아닌) 집합적인 숏(collective shot)을 보여주고 싶다.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에 3D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3D라는 기술 사용에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간혹 3D영화들을 보면 굳이 3D로 찍어야 했을까 싶을 때가 있다. 3D가 줄 수 있는 감동이나 영향력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 채 무작정 찍는 거다. 3D를 잘만 활용하면 대상에 좀더 가까이, 전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대상이 느끼는 걸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면서 현실감이 더 극대화되는 거다. 내 다큐멘터리에서 이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잘해낼 자신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3대에 걸친 가족이라든지 네덜란드의 청어잡이 선원들처럼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본인에게 익숙한 곳들이다.
=내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자바 출신이고 나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랐으니까 아무래도 내 지식이라는 게 두 나라의 문화에서 올 수밖에 없을 거다. 사실 담아내려는 대상에 대해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대상을 조사하고 제대로 아는 게 이 작업의 첫 번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인 거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잘 아는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제작에 필요한 펀딩을 받는 것도 유리했다.

-다큐멘터리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다큐멘터리 산업은 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 더 많은 관객이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기엔 3D와 같은 기술이 일조할 거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힘 있는 서사로 다큐멘터리를 잘 만드는 거다. 그러면 극영화와도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 이미 늘 예상 가능하게 전개되는 극영화에 관객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 않나. 반면 다큐멘터리는 어떤가. 예측할 수 없는 ‘리얼 라이프’다. 이거야말로 진실이다. 이 진실에 귀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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