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세상과 단절된 소년, 소녀 <소녀>
2013-11-06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늑대가 왔다고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어린이들에게 거짓말의 해악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 우화의 교훈은 어른이 되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거짓말과 예의는 종이 한장 차이도 안 날뿐더러 진실과 거짓은 단지 시선의 차이일 뿐인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도발적인 포스터와 ‘소녀’라는 단어가 풍기는 성적 판타지 때문에 미성년자들의 청순에로물처럼 보이는 <소녀>는 사실 이 진실과 거짓말 그리고 그 사이를 줄타고 있는 소문의 폭력성에 희생당하는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불거진 소문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친구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윤수(김시후)는 시골로 전학 오게 된다. 낯선 마을에서 윤수가 가장 먼저 마주친 스케이트 타는 소녀 해원(김윤혜)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소녀는 학교에서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수업시간에도 잠만 잔다. 아이들은 그녀가 신기(神氣)가 있다, 헤프다, 지능이 좀 모자라는 아버지와 야릇한 관계다 등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생산하며 해원을 멀리한다. 윤수는 소문을 믿지 않고 해원에게 다가간다. 그녀에게 새 스케이트를 선물한 것을 계기로 둘은 가끔 따로 만나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해원을 대하는 태도, 그녀의 묘한 분위기 그리고 뒤를 잇는 이상한 사건들까지 겹치면서 윤수의 마음에도 해원에 대한 의심과 공포가 생겨난다. 하지만 소년의 트라우마 때문에 소문과 거리를 두려 하고 마침내 해원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그 모든 소문과 그것을 생산해낸 마을 사람들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이상, 한가역반응> <저수지의 개들> 등 독립영화에서 자기만의 정치색과 스타일을 구사했던 최진성 감독의 첫 번째 상업장편 <소녀>는 스타일에 집중한 영화다. <렛미인>을 상기시키는 소년, 소녀만의 끈끈한 유대감과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감이 예견된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이미지를 담은 화면은 아름답다. 하지만 서사에서도 느껴지는 단절감은 관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소문의 실체를 밝히는 데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꼭 필요한 설명(적어도 그날 밤 윤수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마저 누락시켜버림으로써 관객은 윤수가 무엇에도 불구하고 해원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구제역 때문에 이유 불문하고 땅속에 파묻힌 돼지들의 이미지는 시선을 사로잡지만 소년, 소녀의 서사와 너무 날것으로 접합되어 의미를 생성하기도 전에 생매장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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