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감정을 조각합니다
2013-11-15
글 : 송경원
사진 : 오계옥
<소녀> 손원호 촬영감독

Filmography

영화 <소녀>(2013)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2012) 영화 <블라인드>(2011) 영화 <전설의 고향>(2007) 영화 <울어도 좋습니까?>(2006, 미개봉)

최진성 감독의 <소녀>는 겨울영화다. 눈 덮인 시골 마을은 겨울 한복판에 푹 잠겨 있고 소년은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를 마주한다. 단순히 계절의 배경이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영화라는 건 아니다. 얼어붙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소년소녀의 마음마저 한겨울 고드름처럼 날카롭고 단단하다. 이 시린 겨울을, 소년소녀의 얼어붙은 마음까지 화면 위에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손원호 촬영감독의 몫이었다. “아쉬운 점, 어려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촬영감독의 몫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삼 촬영의 기본이 무엇인지 배운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다. <소녀>에서도 프레이밍, 구도, 색감 등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단 하나의 원칙을 잊지 않았다. 바로 촬영은 빛을 만지고 조각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저예산영화인 <소녀>는 원하는 만큼 충분한 환경을 갖추고 촬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차피 전부를 얻을 수 없다면 컨셉을 명확하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중했던 건 빛의 모티브다. 낮은 확실히 밝게, 밤은 확실히 어둡게 해 대조를 부각하려 했다.” 덕분에 그는 <소녀>에서 인상파 화가의 풍경화처럼 순간의 감정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사실 눈밭에 서보면 반사된 빛에 눈부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개 카메라를 들면 앵글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자세히 담아내려는 강박이 생긴다. 특히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더 그런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밝기, 색감 등 여러 기술적인 지표들에 일부러 집착하지 않으려 했다. 서늘한 겨울의 톤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기본, 그러니까 빛에 집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 출신으로 지금은 한예종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손원호 촬영감독은 꾸준히 현장과 아카데미를 오가며 경험을 쌓아왔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늘 기술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 앞으로 달려나가다 보면 종종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좋든 싫든 늘 기초를 반복하게 된다. 가르치면서 다시 배운다. 그게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입시 경쟁에 지쳐 무작정 문화예술분야에 지원했다는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시절의 경험이 오늘날 자신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별히 촬영전공을 염두에 두고 입학한 건 아니었다. 그땐 연기, 연출, 촬영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고 경험할 수 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게 오히려 빨리 오는 지름길이 아니었나 싶다.” 섞이고 넘나든 경험이 종합예술인 영화의 기본을 다져준 셈이다.

“연극쪽 수업은 배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배우의 심정을 이해하게 해줬고 조명쪽 경험은 빛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게 해줬다.” 끝내 개봉하지 못한 <울어도 좋습니까>라는 영화로 상업영화 첫 촬영에 발을 들였고 완성 프린트까지 나왔지만 미개봉작으로 남은 이 영화마저 자신의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손원호 감독. “촬영은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 목표지점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만들어간다.” 단단한 바탕을 디디고 서서 묵묵하게 뚜벅뚜벅, 손원호 촬영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GIANT Road Bike

“사이클을 타고 다니면 차를 타고 다닐 땐 볼 수 없던 풍광들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등에 카메라를 메고 자전거를 탄다는 손원호 촬영감독은 오직 자전거만이 발견할 수 있는 속도와 풍경들에 대해 말한다. 운동을 즐기는 그의 필수 아이템. 아름다운 풍경도 찍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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