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명 넘게 봤다는 <숨바꼭질>을 며칠 전에야 봤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애쓰지 말고 그냥 경찰 부르면 단막극 분량으로 끝날 이야기를 1시간40분 동안 보고 있으려니 허리가 아파서 나는 <씨네21> 원고료를 몇번 모으면 소파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도 영화는 묘하게 난해하여 범인이 000씨를 왜 죽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부덕하여 명작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하지만 딱 한번 무서운 장면이 있었다. 새벽에 여자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탄 헬멧 쓴 남자가 내릴 층의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었다. 스물일곱살부터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서만 살았는데, 그 몇년 전부터 일주일의 반은 새벽에 들어갔던(이른 아침에만 나눠주는 지하철 무가지를 집에 들어가면서 처음 봤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무서웠다.
지지난해였다. 이제 이런 짓도 올해가 마지막이겠지, 하는 서글픈 마음으로 인디언 핑크색 꽃핀을 이마 바로 위에 꽂고 나간 날이었다(그래서 지난해부턴 핑크색 꽃 달린 머리끈을 달고 다닌다). 꽃 달린 9cm짜리 힐도 신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9cm의 높이가 버거워 휘청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함께 탄 남자가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누르지 않고 버티다가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고 집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편안한 차림의 앳된 남자를 믿고 11층을 눌렀더니 그 남자는 12층을 눌렀다. 안심했다.
하지만 11층에서 열린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남자가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기요.” 한여름인데도 이마가 차가워졌다. 보안을 한답시고 층마다 출입문이 따로 달려 있던 그 오피스텔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저기, 시간 있으시면… 차나 한잔….” 이 남자 뭐야, 무서워. 머리하고 신발에 꽃을 달고 새벽 네시에 취해서 들어오는, 댁보다 열살은 많을 것 같은 여자한테 차나 한잔이라니, 지금 제정신인가, 총각. 그 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정 이후 남자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뭐, 나중에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도 있어 다음날 회사 가서 자랑하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면 엘리베이터는 온갖 재난의 온상이었다. 몇년 전에 <검은 물밑에서>를 본 다음부터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면 구석에 여자애 하나가 서 있지 않나, 자꾸 구석을 흘깃거리던 나였다. <오멘2>를 보고 나선 고압전선이 엘리베이터 천장을 뚫고 들어와 코브라처럼 춤을 추다가 내 몸에 감기는 건 아닐까 위만 보던 나였다. 나중에 시리즈가 너무 많아서 몇편이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데스티네이션>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고는 걱정이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착신아리>를 보고 충격받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그 자리에 바닥이 있는지 뻥 뚫린 구멍만 있는지 꼭 확인하고 타는 버릇이 생긴 나였다.
그래도 그 모든 유령과 악마보다 무서운 건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는 사람이었다. 서울의 어느 고급 아파트에서 배달원들의 신분을 확인하자 내가 사는 경기도의 하급 오피스텔도 자극을 받았는지 배달원들에게 헬멧을 금지했다. 하지만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철가방이나 치킨 봉지를 들고 있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추행 한번 하자고 짜장면을 볶거나 치킨을 튀겨오진 않을 테니까(아니, 그렇게 열심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과 말끔한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는 사람이 훨씬 무섭다.
그렇게까지 길지는 않았던 3X년 인생,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나에게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은 허름한 차림의 노동자보다는 명품 재킷을 입은 엘리트들이 많았으니까. 명문대를 졸업했다거나 아버지를 잘 만났다거나 유학파라거나 5개 국어를 유창하게 한다거나… 뭐 그런 사람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