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잉여 세대의 냉소주의 <잉투기>
2013-11-13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칡콩팥’이라는 아이디명의 태식(엄태구)은 인터넷 격투기 커뮤니티에서 찌질한 자기 과시에 빠져 있다. 어느 날 게시판에서 늘 자신과 대립하던 아이디명 ‘젖존슨’에게 속아 실제 현실에서 무차별 폭력을 당하게 되는데 그 장면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치욕감에 복수를 다짐한 태식은 동료 희준(권율)과 함께 젖존슨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격투기를 배우게 되고 인터넷 먹방을 진행하는 영자(류혜영)라는 여고생을 만나게 된다.

영화 <잉투기>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제목은 ‘잉여들의 격투기’의 준말이다. 목표도 투지도 없이 살아가는 잉여 폐인들에게 모니터 뒤에 숨지 말고 현실의 냉혹한 링 위에 직접 나와 싸워보라는 취지를 전하는 잉투기 대회는 실제 개최된 바 있다. 첫 장편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은 서늘한 호러 단편 <숲>으로 2012년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독립영화계의 촉망받는 신인이다. 미친 눈빛 연기를 선보인 ‘태식’ 역의 엄태구는 감독의 친동생이다. 감독은 이종격투기, 현피(인터넷에서 싸우던 사람이 실제 만나 싸우는 것), 먹방 등의 소재를 주제와 조화시켜나가는데, 잉여 세대의 냉소주의를 돌파해가는 솜씨가 꽤 야무지다. 왕년의 아이돌 스타였으나 악플러가 되어버린 젖존슨을 찾아다니던 태식이 그의 실체를 알아가며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보는 과정도 자연스럽다. 영화는 익명의 가면 뒤에서 폭력을 발산하지만 현실에서는 낮은 자존감을 지닌 키보드 워리어들의의 어깨를 토닥이고, 외로움을 달래며 홀로 먹방을 즐기는 외톨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들을 밀쳐내고 타자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감독은 그들이 지닌 방향성 없던 폭력의 에너지를 모아 삶에 맞서는 생산적 투지로 전환해낸다. 액션 장르적 쾌감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폭력을 소재화하는 방식의 윤리성은 독립영화로서 <잉투기>가 지닌 신선한 미덕이다. 희미하게 클로즈업되는 최후의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시대의 표정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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