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링’은 ‘난징’의 옛 지명으로 이 작품은 살육의 광기가 휩쓸고 지나갔던 1937년의 ‘난징 대학살’ 당시 그 지역의 윈체스터 대성당 수녀원 학교의 소녀들을 둘러싼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성당 신부의 장례를 치르러 왔다가 어쩔 수 없이 소녀들의 보호자 역할을 맞게 된 장의사 존(크리스천 베일)과 제네바조약으로 중립지역으로 선포된 성당으로 다짜고짜 피신 오게 된 홍등가의 여성들이 소녀들과 어우러져 무자비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응하면서 갈등과 화해의 극적 드라마를 만든다.
현란한 색채와 화려한 미장센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던 장이모는 이번 영화에서 전장의 피폐함과 가녀린 육체를 뚫는 총칼의 무자비함을 무채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을 통해 구현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채로운 유리 조각들이 살육전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오버랩되는 영상편집은 비극성을 아이러니하게 강조한다. 하지만 순수한 소녀들의 삶의 가치와 타락한 홍등가의 여성들의 삶의 가치를 교환함으로써 희생의 숭고함을 역설하는 스토리라인에 쉽게 동의하긴 어렵다. 옌거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개별 인물이 겪는 극적 갈등의 해소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원초적인 야만성과 폭력성에 대한 가감 없는 폭로와 재각인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을 듯하다.
24년 전 <태양의 제국>에서 일본군의 비행기를 동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린 크리스천 베일과 난징에서 어린 소녀를 구출하는 성인 크리스천 베일을 비교해보는 재미와, 상냥하지만 잔혹한 이중성을 지닌 일본 장교로 분해 일본의 과거 만행을 폭로하는 와타베 아쓰로의 소신있는 연기도 이 영화의 숨겨진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