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주교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2013-11-13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랑 때문에 살해 위협까지 받는 한 남자가 있다. 세계 성공회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주교가 된 진 로빈슨이다. 하느님에 대한 신실한 사랑과 파트너 마크를 향한 애정은 그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하나의 삶을 이룬다. 그런 그의 사랑을 뒤흔드는 건 외부로부터 온다. 성경의 권위를 위협하고 성공회 분열을 부른다는 이유로 성공회 주교 전원이 모이는 램버스 회의 참석을 불허한 교회 원로들이나 동성애가 추잡한 이유를 열거한 협박 메일들 그리고 주님이야말로 동성애를 혐오한다고 말하는 신자들까지.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은 엄숙과 권위로 무장한 교회가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었던 동성애 이슈를 실존 인물, 그것도 주교를 전면에 내세워 보여준다. 공공연히 알려졌지만 쉬쉬해온 교회 내의 다양한 성적 취향과 입장 차를 근거리에서 감지할 수 있었던 데는 로빈슨 주교를 섭외한 공이 컸다. 이어서 <로빈슨 주교의…>는 주교의 사생활을 드러내며 교회의 보수성에 도전하기보다는 훨씬 진중하고 넓은 포용력으로 개인의 신념과 사랑의 문제에 접근해간다. 주교의 가족, 동료, 지역사회의 신도들을 차례로 비추고 그들 속에서 게이, 레즈비언 커플들과 에이즈 환자, 아프리카 흑인 여성처럼 편견과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까지 담으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로써 동성애는 주교 개인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된 만큼 공동의 해법이 필요한 것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인간성과 정의의 문제’라는 주교의 말이 곧 <로빈슨 주교의…>가 견지하는 사랑의 메시지다. 무엇이 사랑인지 재차 묻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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