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한 마을의 지옥도 <사이비>
2013-11-2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이비>는 <돼지의 왕>을 연출하여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던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수몰 지역으로 지정된 한 시골 마을. 두 부류의 나쁜 인간이 때마침 마을에 들어온다. 한쪽은 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이다. 사기범으로 공개 수배 중인 최경석은 교회의 장로인 척하면서, 아직 사태의 전모를 잘 모르는 젊은 목사 성철우를 앞세워 마을 사람들의 수몰 보상비를 헌금으로 갈취하려 한다. 또 한 부류는 노름과 싸움을 일삼는 마을의 폭력배 김민철이다. 그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딸 영선이 대학에 가려고 모아놓은 돈으로 또 노름을 하고 행패를 부린다. 최경석과 영선 아버지 김민철이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시비가 붙으며 <사이비>는 본격적인 대결 구도로 들어간다.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는데, 권해효가 최경석, 양익준이 김민철, 오정세가 성철우, 박희본이 김영선을 연기한다. 그중에서도 사기꾼들 특유의 입담을 생생하게 살려낸 권해효와 이중적 인간의 뉘앙스를 소름끼치게 전달하는 오정세의 목소리 연기가 유독 돋보인다.

최경석 일당이 사기꾼인데도 마을 사람들이 이미 그들을 철저하게 믿고 따르게 되었다는 것. 마을에서 가장 흉악한 자인 김민철만이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아차린다는 것. 하지만 김민철의 악행은 여전히 멈추지 않아서 마을 사람들이 그의 어떤 주장도 듣거나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마을에서 가장 악한 자만이 지금 속지 않는 유일한 자라는 것. 이 모순이 <사이비>의 긴장을 높이며 한 마을의 지옥도를 그려낸다. <사이비>가 그려내는 세상은 마침내 출구가 없이 가로막히고 만다.

어두운 그림체와 서늘한 서술 전개를 활용하여 사회적 병폐가 품은 긴장의 압력을 높이는 것이 연상호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것 같다. 다만 감독의 폐쇄적이며 결정적인 세계관은 경우에 따라 단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돼지의 왕>에서는 전자의 느낌이 더 강했는데, <사이비>에서는 후자의 느낌이 더 강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부여된 운명의 조건이 무리 없이 납득되고 있는 결과인 것 같다.

<사이비>는 믿음에 대한 질문이 집요하게 주제화되어 있다. 하지만 <사이비>가 흥미로운 건 그 주제의 설파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조리 나쁘거나 너무 무지해서 나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이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들 안에 던지고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케 한다. 전부 다 나쁜데 그 나쁜 것들 중 누가 더 센가, 하는 이 불쾌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 <사이비>는 나쁜 힘들의 우열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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