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서른, 비로소 성장하는 나이
2013-11-21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사랑해! 진영아> 이성은 감독

여성 감독일 거라고 생각한 건 이성은이라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성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사랑해! 진영아>는 서른살의 여성 시나리오작가 진영(김규리)의 사랑과 진로 그리고 가족에 대한 고민을 그려낸 작품이다. 때로는 섬세하게, 또 때로는 귀엽게 진영과 그의 주변 인물을 묘사한 솜씨 때문에 감독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성 감독의 영화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여성 감독인 줄 알았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예전에 초등학교 여학생 진영이의 성장통을 그렸던 <진영이>(2006)로 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에 갔는데 강릉씨네마떼끄 박광수 사무국장이 여성 감독인 줄 알고 나를 한참 찾다가 내 얼굴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돌아선 적도 있었다. (웃음)”

-<사랑해! 진영아>는 단편 <진영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진영이>를 보고 “진영이가 얼마나 컸을까요?”라고 물어보더라. 시간이 지났으니 진영이를 연기한 배우가 몇살이 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영화 속 인물이 지금은 몇살쯤 되었을까로 착각했다. 한참 잊고 있었던 진영이인데 갑자기 생각나더라. <사랑해! 진영아>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다.

-왜 서른살 여성의 성장담인가.
=대한민국의 20대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연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과제 때문에 고등학생 때보다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하는 나이가 20대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꿈을 꾸고, 진로를 고민하는 건 30대인 것 같다.

-진영이의 연애와 진로에 대한 고민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여자 친구들이 많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여성들이 표현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사실 진영을 진영(여성)이 아닌 ‘진형’(남자)으로 바꾸어도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처한 상황은 비슷하니까. <사랑해! 진영아>는 30대 여성의 이야기지만 30대 남성의 이야기일 수도, 이제 마흔이 된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규리의 외모를 가진 진영이 서른살이 되도록 키스를 못해봤다는 설정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
=첫 촬영을 하고 모니터를 보면서 연출부, 촬영감독과 함께 상의를 했다. “진영이가 너무 예쁜 게 아니야? 어쩌지?”라고 말이다.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건 영화라는 거다. 외모뿐만 아니라 진영의 성격과 상황을 통해 캐릭터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겠다 싶었다. 인터넷에도 이와 비슷한 의견의 댓글이 올라가 있다. ‘진영이 너무 예쁜 거 아냐?’라고. 그 댓글에 이런 댓글이 또 달려 있더라. ‘예쁜 여자가 나와야 관객이 영화를 보러 온다’고. 그분께 감사했다. (웃음) 그 말이 답인 것 같다.

-김규리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아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황동구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김규리씨에게 시나리오를 줬는데 3일 만에 “하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간 규리씨가 차가운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해왔는데 이 작품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혀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감독 데뷔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출부 생활을 마지막으로 한 작품이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였다. 29살 때였다. 그 영화가 끝난 뒤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4번이나 왔지만 모두 엎어졌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정말 많았다. 딱 한번 포기를 한 적 있다. 36살 때였다. 취업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려는데 쓸 만한 경력이 하나도 없더라. 결국 <사랑해! 진영아>의 박지선 촬영감독과 함께 술 한잔 마시고 다시 하기로 했다. <사랑해! 진영아> 시나리오를 다시 쓰려고 결심했던 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다.

-영화는 11월7일 이미 개봉했다. 결과에 만족하고 있나.
=지인들은 데뷔하는 게 가장 어려운데 그걸 해냈으니 스코어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얘기해주더라. 작은 영화로서 극장 수가 결코 적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평가 자체가 유보된 느낌은 분명 있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담백한 건 <사랑해! 진영아>로 해봤으니 이제는 장르영화라는 MSG를 쳐보자 싶은 마음으로 좀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