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레이의 <자니 기타>(1954)에서 조앤 크로퍼드는 서부의 남자들을 부하처럼 부리는 여장부 비엔나로 나온다. 비엔나의 기가 얼마나 센지, 서부 최고의 총잡이 자니 기타(스털링 헤이든), 그리고 무법자 댄싱 키드(스콧 브래디)도 그녀 앞에선 왜소한 부하처럼 보일 정도다. 비엔나는 여성이기보다는 불패의 서부 사나이처럼 행동한다. 단호하고, 용기 있고, 거침없다. 하지만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 비엔나라는 캐릭터에는 모든 난관을 혼자 헤쳐나가는 여장부의 이미지가 뚜렷하지만 동시에 주위에 사람이 너무 없는 고립된 분위기가 덧씌워져 있다. 조앤 크로퍼드의 삶이 바로 그랬다.
‘길거리 캐스팅’ 신화로 유명
영화이론가 리처드 다이어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은 1920년대 할리우드가 개발한 홍보 전략이다. 영화계와 전혀 관계없는 순진한 처녀(특히 하층민 출신)가 우연히 영화인의 눈에 띄어 연기자가 됐고, 졸지에 스타가 됐다는 이야기는 ‘아메리칸드림’의 할리우드판 해석이란 것이다. 그럼으로써 할리우드는 전국(세계)의 여성들을 영화의 소비자로 묶어둘 수 있었다.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유혹적인 전략인지는 현재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된다. 말하자면 ‘길거리 캐스팅’이란 영화소비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꾸며낸 이야기이고, 성공의 비결은 노력 혹은 행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조앤 크로퍼드는 전형적인 길거리 캐스팅의 신화를 가진 배우다. 최하층 출신인데, 우연히 영화인의 눈에 띄어, 재주를 발휘할 기회를 얻 었고, 운 좋게 스타가 됐다고 선전됐다. 그러니 ‘팬 매거진을 읽고 있는 당신! 방에서 뛰쳐나와 크로퍼드처럼 할리우드에 도전하라’는 유혹은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크로퍼드는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친부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고, 초등학교 이외에는 변변한 학업도 이어가지 못했다. 계부가 조그만 유랑극단의 주인이었는데, 여기서 무용수들의 동작을 보고 따라하며 자신도 댄서로서의 꿈을 키웠다. 춤 솜씨가 좋아 지역의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이 정도 경력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해볼 만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춤 실력 하나로 할리우드에서 단역을 전전하던 크로퍼드가 일약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당시 MGM 대표였던 루이스 메이어의 눈에 띄면서부터다. 어빙 탈버그와 더불어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발전시킨 전설적인 제작자다. 당시 MGM에는 그레타 가르보와 훗날 어빙 탈버그의 부인이 되는 노마 시어러 같은 스타들이 있었는데, 크로퍼드는 시어러의 대역(Body Double)을 하면서 스크린 경험을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사가 데이비드 톰슨에 따르면 운 좋게도(?) 크로퍼드는 메이어의 정부(情婦)가 됐고, 그때부터 MGM의 대표 배우로 성장하기 시작한다(<할리우드 영화사>). 말하자면 제작자와의 흔해빠진 ‘섹스 스토리’로 크로퍼드는 행운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로퍼드는 메이어에 의해 조종만 당하는 인형이 아니었다. 그는 메이어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조셉 케네디(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친)라는 정치 거물과 ‘특별한’ 관계였고, 또 스타 패밀리의 일원인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주니어의 아내였다. 게다가 콤비로 출연했던 클라크 게이블과도 염문을 뿌렸다. 크로퍼드는 한번 잡은 스타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인맥을 확장한 셈이다.
‘모던 걸’에서 여성 가부장까지
1930년대에 클라크 게이블과는 모두 8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다. 여기서 크로퍼드는 도시의 ‘모던 걸’(flapper) 이미지로 인기를 얻는다. 그녀는 화려한 삶을 꿈꾸는 도시 직장여성의 상징처럼 보였다. 최신 유행의 섹시한 드레스를 걸치고, 남성들과 스스럼없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재즈에 맞춰 춤추고, 부자 애인의 고급 차를 탄 모습은 공항시대 여성들의 도피주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당당한 크로퍼드의 상대역으로 주로 클라크 게이블이 나왔다. 이를테면 <포획된>(Possessed, 1931)에서처럼, 제멋대로 살았던 신여성 크로퍼드는 신사 게이블을 만나 새로운 삶에 눈뜨고 또 사랑에도 성공하는 식이다.
두 배우는 실제로 아주 친했는데, 서로에게 연민을 가진 것으로 해석됐다. 이들은 모두 하층민 출신으로, 가난 때문에 소프트포르노에 출연했다는 의심까지 받을 정도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크로퍼드의 초창기 출세작 가운데 하나인 <그랜드 호텔>(1932)에서 그녀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섹스도 이용하는 비서로 나오는데, 그것이 허구의 이미지로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공항시대 모던 걸의 이미지로 크로퍼드는 베티 데이비스, 바버라 스탠윅 등과 경쟁하는 인기 배우였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부터, 말하자면 30대가 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게이블과 마지막으로 공연한 <이상한 화물>(Strange Cargo, 1940)이 그나마 주목받는 정도였다. 이때 끝날 것 같은 경력을 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크로퍼드를 진정한 스타로 기억하게 할 작품이 발표됐는데, 바로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밀드레드 피어스>(1945)이다. 필름 누아르로선 독특하게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과장하자면 험프리 보가트의 역할을 여성인 그녀가 맡은 셈이다.
주인공 밀드리드는 성공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억척 여성인데, 그것은 크로퍼드의 스크린 이미지가 압축된 캐릭터였다. 강인하고 단호하고 집념이 있었다. 여기서 크로퍼드는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성공을 위해 과감했던 모던 걸 크로퍼드는 <밀드레드 피어스>를 통해 가부장과 같은 권위와 투지를 가진 여성으로 변모했다. 곧 크로퍼드는 남자의 역할을 남자보다 더 훌륭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으로 각인됐다.
슈퍼우먼의 이미지가 더욱 강조된 것이 <자니 기타>이다. 필름 누아르에 이어 이번엔 웨스턴에서 주인공이 됐다. 허리에 총을 차고, 긴 다리로 느릿느릿 걸으며 남자들을 내려다보는 여유 있는 태도는 헨리 폰다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만큼 권위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런 권위가 가족관계까지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크로퍼드는 네번 결혼했고, 입양한 자녀만 네명 있는데, 특히 큰딸과는 사이가 아주 나빴다. 딸에겐 단 한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고, 딸은 모친이 죽자마자 전기를 발간하여, 크로퍼드는 자녀들을 권위로 학대한 악녀라고 폭로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크로퍼드의 불행한 가족관계가 짐작되는 사건이었다. 크로퍼드는 남자 같은 카리스마로 스크린의 스타가 됐는데, 그런 성격이 개인적인 행복까진 보장하진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