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제니퍼 로렌스] 섀도 헌터
2013-11-26
글 : 김보연 (객원기자)
제니퍼 로렌스

<비버>에서 함께 연기했던 조디 포스터가 제니퍼 로렌스에게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들의 공통점에 대해 물었다. 제니퍼 로렌스의 대답은 이랬다. “전부 어두워요.” 별거 아닌 간단한 대답 같지만 이 대답이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1990년에 태어난 젊은 배우이기 때문이다(참고로 위의 대답은 2011년, 그러니까 그녀가 22살 때 했던 말이다). 몇편의 TV드라마에서 단역으로 활동하다 19살 때 출연한 <포커 하우스>(감독 로리 페티, 2008)로 첫 영화연기를 시작한 제니퍼 로렌스는 그 뒤로 항상 어두움을 갖고 있는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게다가 이 어두움이란 단순한 십대 소녀의 우울함이나 충동적으로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14살 소녀를 연기한 <포커 하우스>에서 그녀는 성폭행을 당했고, <버닝 플레인>(2008)에서는 문자 그대로 엄마를 불태워버렸다. 어른들에게 눈에 멍이 들도록 맞아야 했던 <윈터스 본>(2010)은 말할 것도 없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에서는 마음에 상처를 간직한 돌연변이를 연기했다. 최근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은 아예 그녀를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그렸다.

제니퍼 로렌스는 그렇게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처럼 외로워하고, 주위 사람들은 구타, 성폭행, 마약 등 갖은 지독한 수단을 동원해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각 영화의 감독들이 그녀에게 최대한 고통을 준 뒤 이를 견디는 그녀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기로 약속을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때 그녀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 우울함과 고난을 연기할까. 그리고 감독들은 그녀의 어떤 점을 보고 이 24살의 젊은 배우에게 이런 연기들을 줄줄이 맡긴 것일까.

가장 최근 제니퍼 로렌스가 작업한 <헝거게임> 시리즈를 보자. 지금까지 두편의 영화가 개봉했으며 앞으로 두편이 더 만들어질 이 시리즈에서 그녀가 연기한 캣니스는 살아남기 위해 동년배의 친구들을 죽여야 하는 동시에 두 남자와 한꺼번에 사랑에 빠져야 한다. 게다가 이번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에서 캣니스에게 부과된 고난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으며, 자연스럽게 보다 밀도 높은 감정을 끌어내야 한다. 당연히 배우에겐 어려운 캐릭터였을 것이다. 제니퍼 로렌스 역시 캣니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소녀는 쉴 수가 없어요. 그녀는 영화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에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쉴 수가 없다”라는 말과 “불행하다”라는 말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두편의 영화 내내 그녀는 한순간도 쉬지 않은 채 모든 장면에 출연하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게다가 이번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의 가장 큰 변화는 그녀에게 역사적 사명까지 안긴다는 것이다. 전편에서 극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깨고 ‘공동 우승’이란 드라마를 만들어낸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독재에 억압받는 시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사는 것만을 바랐던 그녀가 상상도 하지 않았던 혁명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며 적을 죽여야 하고, 애인과의 사랑을 지키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하고, 도망가고 싶지만 결국 사람들의 앞에 서야 한다.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인 뒤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다시 고뇌에 빠지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지만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를 새롭게 연출한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은 이 캐릭터를 오히려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캣니스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진짜 소녀다. 그녀가 내리는 결단은 우리가 평소에 믿고 있는 리얼리티에 기반하고 있다. 동생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녀는 히어로가 되길 원하지 않고, 매우 사실적인 약점도 갖고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런 캣니스 역에 제니퍼 로렌스를 캐스팅했다면 완벽한 조합을 얻은 것이다.” 즉 감독은 캣니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에게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진짜 소녀”의 이미지를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기구한 운명의 인물은 비록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지만, 여기에 맞설 때는 오히려 일상적인 차원의 보통 연기와 함께 고통을 속으로 삼켜낸다.

이와 비슷한 언급은 제니퍼 로렌스가 “우울한 홈비디오”라고 설명한 <윈터스 본>의 데브라 그래닉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의 돌리는 17살 소녀 역이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20대 중반의 여배우들까지 만났다. 그러다 나중에는 왜 여배우들이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제니퍼를 만났다.”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가 이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죽었을지도 모를 아버지의 행적을 좇는다는, 거의 장르영화나 다름없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소리내 울거나 핏대 세워 소리 지르지 않은 채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연기를 담담히 펼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데이비드 O. 러셀 역시 그녀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그녀는 영화 속 캐릭터처럼 신경질적이지 않아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아리송하다면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티파니 역을 원래 주이 드 샤넬이 맡을 예정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나른한 일상의 공기에 통통 튀는 비일상성을 불어넣는 데 탁월함을 보이는 그녀의 연기와 비교해보면 제니퍼 로렌스의 담담하고 어떨 때는 묵직해 보이기까지 하는 특유의 연기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 더 잘 다가올 것이다.

제니퍼 로렌스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견딜 수 없으며 애초에 한번 겪어보기도 힘든 고난을 통과하는 인물들을 데뷔 때부터 계속 연기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고난의 크기와 그 잔혹성에 반비례하는 일상적인 차원의 연기로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다. 그래서일까, <포커 하우스>에서 그녀의 첫 대사였던 “전 열네살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안 믿어줘요”는 마치 그녀가 앞으로 펼칠 연기를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들린다. 나이에 비해 훨씬 많은 고난을 겪은 듯한 표정, 그리고 눈빛 말이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에서 그녀는 불행한 상황에 처할 것이고, 여지없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의 고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그녀가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한 채 그 인물이 여전히 놓치지 않은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것이 제니퍼 로렌스가 가장 잘하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연기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magic hour

고난 연기는 기본, 섹시함은 옵션

고난에 맞서는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연기를 이야기하면서 이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약 6초간 나온 그녀의 상반신 뒷모습 누드 말이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이전 출연작들을 보면서 그녀가 섹시함을 숨기고 있다는 걸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 영화의 이 장면은 그녀가 연출의 도움을 받아 작정하고 매력을 발산하면 어디까지 섹시해질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물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온몸을 파란색으로 물들인 채 보여준 섹시 연기는 제외다). 그리고 지금 데이비드 O. 러셀과 다시 한번 함께 작업하고 있는 <아메리칸 허슬>에서는 아예 강렬한 팜므파탈을 연기할 예정이라하니 그녀가 어떻게 관객의 동공을 다시 커지게 할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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