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경쾌한 사기극 <갬빗>
2013-11-27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1891년 8월15일 모네는 ‘건초더미’ 시리즈의 그림 두편을 완성하는데, 그중 하나가 <건초더미, 황혼>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1941년 세계대전 당시 파리에서 사라진 뒤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이클 호프먼 감독의 <갬빗>은 이 사라진 모네의 그림을 둘러싼 희대의 사기극을 소재로 한 영화다. 미술품 큐레이터 해리 딘(콜린 퍼스)은 위조 전문 화가인 메이저 윈게이트(톰 커트니)와 힘을 합쳐 런던의 미디어 재벌이자 명화 수집광인 리오넬 샤번다 경(앨런 릭먼)을 속이려 한다. 텍사스 출신의 카우걸 PJ 푸즈나우스키(카메론 디아즈)가 이 작전에 투입되는데, 그녀의 할아버지는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돌격대장 괴링의 별장을 습격했던 미군 병장이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얼핏 완벽한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오류투성이다. 리오넬의 행동이 사뭇 예상을 엇나가는 데다, 카우걸 PJ의 ‘무례한 매력’이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시작한 것이다.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 ‘갬빗’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게임 초반에 체스핀 하나를 전략적으로 희생하는 방식’을 뜻하는 체스게임의 용어다. 주인공 해리가 리오넬을 속이기 위해 짠 계략의 형태가 제목과 흡사하다. 원작은 1966년 로널드 님이 만든 동명의 영화 <갬빗>이며, 이를 바탕으로 코언 형제가 2002년에 시나리오를 새로 썼다. 당시 휴 그랜트를 주연으로 제작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미뤄졌고, 거의 10년이 지난 뒤 다른 감독과 배우들이 뭉쳐 영화를 완성했다. 보다시피 주인공 역은 콜린 퍼스가 맡았고, 리오넬 역은 <해리 포터>의 스네이프 교수로 유명한 앨런 릭먼이 맡았다. 둘은 2003년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지만 그 뒤로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마이클 호프먼이 콜린 퍼스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시기는 그가 <킹스 스피치>(2010)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오르내리던 때였다고 한다. 그는 심각한 연기를 한 뒤였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코믹한 상황을 연기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후 공범 PJ의 역할로 제니퍼 애니스톤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카메론 디아즈로 낙점됐다. 영화를 위해서도 이 선택은 적절했던 듯 보인다. 디아즈의 엉뚱하지만 관능적인 매력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며, 콜린 퍼스와의 언밸런스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쾌한 사기극 <갬빗>의 매력은 후반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배우들의 기존의 매력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한편, 범죄극으로서의 흥미도 다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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