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공유] 허기에 찬 재규어
2013-12-09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용의자> 공유

카 체이싱, 총격 신, 수중 낙하 신, 익스트림 암벽 액션, 북한군의 주체격술까지. 이전까지 없었던 터프한 남성의 세계가 공유의 카테고리에 진입했다. <용의자>는 한때 북한의 특수정예요원이었다가 지금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귀순자이자, 우연히 국가기밀을 손에 넣고 쫓기는 신세가 된 지동철의 진퇴양난을 그린 액션 대작이다. 맷 데이먼과 대니얼 크레이그, 그리고 톰 크루즈가 연상되지만, 공유가 찾아낸 캐릭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존재한다. <도가니>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공유를 만났다.

원신연 감독이 공유를 설득한 비결이 사뭇 궁금하다. <용의자>를 정통 액션영화로 분류한다면, 사실 공유는 그러한 범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배우다. 그가 액션 장르에도 능할 거라는 믿음 혹은 기대가 없어서는 아니다. 그보다 멜로 장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애초 공유의 행적이 남달랐다. 공유는 제대한 남자 배우들이 흔히 택할 법한 ‘강한 남자영화’로 복귀신고를 하지 않았다. ‘남자영화를 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대 뒤 첫 작품으로 멜로영화 <김종욱 찾기>를 택했다. <도가니>(2011)라는 선택 역시 하정우를 필두로 한 무수한 남자배우들의 그것과는 별개였다. 키가 유독 큰 공유는 그들과 동떨어져 섬처럼 존재하는 배우였다. <도가니> 이후에도 공유는 ‘남자’, ‘액션’이라는 충무로 주류영화의 키워드를 뿌리치고, 또다시 TV드라마 <빅>으로 부드러운 멜로남 공유의 매력을 과시했다.

그래서 <용의자>는 예외다. 그동안 그의 궤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영역의 영화다. 공유가 연기하는 지동철은 한때 북한의 최정예 특수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떠도는 존재다. 사건과 갈등의 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지동철은 택시대리운전을 하며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남자를 쫓는다. 또 한편으로 그는 친분이 있던 박 회장(송재호)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당해 국정원으로부터 쫓긴다. 이렇게 마련된 도심 속 도망자라는 설정이 공유를 낯선 액션의 세계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본’ 시리즈와 ‘007’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을 본다거나, <베를린>의 첩보전과 <감시자들>의 도심 액션을 연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제작비 총 90억원, 9개월간의 장대한 촬영기간이 투입된 대작이다. “처음엔 거절했다. 멋있는 남자 배우라는 일반적인 평가에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도 나 대신 다른 배우가 하면 배아플 것 같다는 마음이 안 들더라. (웃음) 그런데 한참 지난 뒤 원신연 감독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꼭 나와 같이 하고 싶다고.” 결과적으로 원신연 감독을 만나고 공유의 마음이 흔들렸다. “정통 액션영화지만 지동철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라는 감독님의 말이 주는 설득력이 컸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때 최정예요원이었지만 그 신분을 벗어난 귀순자. 유사한 소재,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 속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대의적인 세계관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가족을 잃은 인간 지동철의 절박한 마음이 공유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에게서 하얀 북극곰 같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봤을 때, 원신연 감독이 공유에게서 찾은 건 ‘재규어’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마침 <빅>의 노출 신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때였고, 그때 화보를 찍은 걸 감독님이 보셨다고 하더라.” 공유에겐 그게 일종의 숙제와도 같았다. “몸의 근육에 지동철의 캐릭터가 묻어나야 했다. 체지방을 줄이는 식이요법으로 조금씩 하루 여섯끼를 먹었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다 거울을 보니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허기에서 오는 눈빛은 나 스스로 한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용의자>는 그 어느 때보다 공유의 상반신 노출 신이 많은 영화지만, 그게 기존 작품에서처럼 팬심을 자극할 용도로 부각되진 않는다. 이를테면 캐릭터를 위한, 정확한 쓰임새가 있는 노출이다. 3%만 살아남는다는 죽음의 훈련을 받을 때 절벽을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특히 근육의 움직임이 절대적으로 과시된다. “지동철이 사람이라는 생각보다 훈련받은 짐승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장면들은 지동철의 면모를 드러내는 장치 같은 것이다.” 촬영을 쉬는 날 공유는 동물원에 가서 우리 안에 있는 재규어를 직접 봤다고 한다. 원신연 감독이 원하는 걸 알고나서 그걸 극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눈빛, 침묵으로 하는 이야기

<용의자>에서 공유는 대사보다 더 많은 지문을 할당받았고, 그는 대역을 거의 쓰지 않고 직접 고난도 액션 연기를 해냈다. 촬영이 끝난 뒤 원신연 감독조차 ‘내가 너무 배우를 혹사하는 거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대사의 공백을 채우는 또 다른 것은 재규어에게서 보았던 눈빛이다. 시시각각 움직이는 지동철의 액션만큼 마음을 흔드는 건 결국 공유의 눈빛 연기에 있었다. 아내와 함께했던 순간의 행복한 감정도, 가족을 잃고 난 뒤의 분노도 대사가 아닌 눈빛에 담아야 했다. 용병으로서의 지독한 면모도 눈빛에서 나온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늘 공유에게 바랐던 건 바로 이 말없는 대사가 아니었을까. <도가니>의 마지막 장면, 인호가 보여준 흔들림 없는 눈빛이, <빅>의 윤재가 차 안에서 멀어져가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의 로맨틱한 분위기의 파장이 다시금 떠오른다. 드라마, 멜로, 액션 장르의 구분 없이 공유가 고수하고 간직하는 그것은 바로 간절한 눈빛이다. <용의자>의 끝을 보면, 원신연 감독이 본 재규어 형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도가니>의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정말 조마조마했다. 내가 침묵으로 하는 이야기를 알아차릴까. 그게 통했다. <용의자>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물론 나는 아직 멀었다. 얼마 전 <관상>에서 송강호 선배가 바다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을 보는데 정말 놀랍더라. 과연 송강호라는 배우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묵직한 바위에 깔리는 것 같은 느낌이 오더라. 나도 그 나이가 됐을 때 저런 표정을,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더라.”

<용의자>에서 공유는 쫓는 자이자 쫓기는 자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그는 남자(실은 변장한 여자)를 사랑하며 혼란에 빠졌었고, <빅>에서 그는 몸이 바뀐 채 여자를 사랑하는 모순을 겪는다. 예상을 벗어난 혼동 속에 처한 캐릭터들은 공유의 단골 캐릭터다. “내 성향 자체가 전형적인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하면 더하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타협이라는 건 불가피하지만, 내가 가진 걸 다 잃으면서 하고 싶지는 않다.” 선호하는 장르도 욕심나는 장르도 아니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용의자>를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과 같이 뒹굴고 고생하다보니 전우애 같은 게 생기더라.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한살이라도 나이 들기 전에 이런 영화를 했다는 안도감도 생긴다. 십년 뒤라면 물리적으로도 이런 파워와 에너지가 나올 수 있었을까. (웃음)” <도가니> 이후 영화는 2년 만이니 참 오랜만이다. 내년엔 1년에 2편씩은 촬영에 들어가고 싶다는 게 그의 지금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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