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들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 <집으로 가는 길>
2013-12-11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2004년 10월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 평범한 대한민국 주부 송정연(전도연)은 마약소지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다. 정연은 후배의 부탁으로 프랑스 원석을 밀반입하는 중이었다. 돈이 급한 정연은 불법인 줄 알고도 가방을 운반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행 가방에 든 것이 마약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마약범은 외부와 연락을 할 수도 없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뒤늦게 체포된 사실을 듣게 된다. 정연의 남편 종배(고수)는 아내를 돕고 싶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절망한다. 종배는 외교부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호소해보지만 행정당국은 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답만 들려준다. 결국 정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대서양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로 이송된다. 강압적인 교도관들과 거친 재소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정연의 하루하루는 악몽이다. 무엇보다 정연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제발 1년인지 10년인지 그것만 알려달라고 울부짖어보아도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정연은 자신이 행한 불법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지만 법적 절차에서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정연과 종배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은 실화다. 영화에는 허구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프랑스에서 마약범으로 오인된 주부가 24개월 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정연이 겪은 어이없는 비극을 재현하기 위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오를리 공항, 도미니카공화국의 나야요 여자교도소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 현지 촬영을 성사시키기 위해 쏟은 준비 기간만 2년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이 수감되었던 마르티니크 뒤코 교도소 장면을 찍기 위해 선택된 도미니카 나야요 교도소에서는 교도관과 재소자들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연이 처한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관객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다. 이처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실화라는 걸 믿기 힘들다. 영화는 정연이 처한 답답함과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장치들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그녀가 있었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전달된다. 정연과 종배는 무자비한 현실을 견뎌내면서 한 인간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숙하고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정연 부부는 가족애로 현실을 견딘다. 시련 속에서 부부애와 가족애는 깊어지고 절실해진다. 하지만 가족애로 보상받기에는 이들이 당한 고통이 너무 크다고 느껴진다. 더 분노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하는 애매한 아쉬움이 남는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