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성의 진공 상태 <사라진 기억>
2013-12-11
글 : 윤혜지

욕구불만 상태의 뇌신경 연구원 루카스(마리우스 잠폴스키스)는 뇌를 연결해 타인의 기억정보를 빼내는 실험을 시작한다. 코마에 빠진 여인 오로라(훌가 주탈리트)의 무의식과 접속한 루카스는 이성의 진공 상태 속에서 오로라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눈 뒤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급기야 루카스는 오로라를 깨우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에 이른다.

자극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그 조합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균형 있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화면은 서늘하나 감정과 사운드는 폭발적이다. 특히 종종 신을 꽉 채우는 전자기타 사운드는 보는 이를 흥분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무의식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은 채도가 낮은 비디오 아트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텅 빈 회색의 공간들, 기하학적인 구조물들, 뇌의 한 부분을 은유하는 듯한 그래픽들이 그러하다. 일례로 루카스와 오로라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음식들은 그저 그림이거나 가짜처럼 보인다. 전시장 같은 그 공간에서 둘은 잔뜩 굶주렸다는 듯 음식을 먹지만 어쩐지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엔딩으로 갈수록 영화의 정서는 무섭게 고조된다. 루카스가 약물을 투여한 후 무의식에서 만난 오로라는 루카스를 난교가 벌어지고 있는 방으로 데려간다. 뒤엉킨 육체들은 점점 한 덩어리가 되어가는데 이때의 분위기와 비주얼이 가히 충격적이다. 둘 다 나신인 채로 한참을 뛰는 장면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클로즈업되는 엔딩 장면에서도 눈을 뗄 수 없다. 훌가 주탈리트의 연기가 특히 빛난다. 2008년 <가일>로 장편 데뷔한 리투아니아 출신 크리스티나 부오지테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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