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2013-12-12
글 : 정지혜 (객원기자)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매키 알스톤 감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 했던가. 이 문장대로라면 세계 최초로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성공회 서품을 받은 진 로빈슨 주교에게 누가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하느님과 파트너를 향한 그의 사랑을 죄라 말하고, 살해 위협은 그의 일상이 된다. 그런 주교를 4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이가 있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의 매키 알스톤 감독이다. 성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시선을 두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지와 비난이 엇갈린다. 사랑과 사람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그에게 영화의 국내 개봉에 맞춰 질문을 건네봤다, 세상의 편견과 편견의 저편에 대해서.

-<The Truth Shall Set You Free>부터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이하 <로빈슨>)까지 오랫동안 로빈슨 주교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사회 평등을 위해 일한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우리가 자유를 만끽하는 데까지는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는데 그걸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것 같다. 로빈슨 주교님도 그중 한분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전세계적 감시의 압박과 적대감을 잘 조절해서 신의 부름을 받는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 사회적 움직임 속에서 시민의 평등권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바뀌어가는가를 목격하고 싶었다. 주교님을 찍을 수 있었던 건 내가 누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살해 위협까지 받는 인물을 근거리에서 촬영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겠다.
=<로빈슨> 촬영 당시 설교 중인 주교님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헬멧 안쪽에 총이 있는 것 같더라. 주교님의 운명이 결정될지도 모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게 되었지만 나는 속으로 ‘안 돼, 안 돼’라고 중얼거릴 뿐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도 남자는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지만. 이 일로 나는 정의를 위해 주교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그건 목숨을 바칠 각오였고 10년 전 주교 서품을 받는 순간부터 매일 다져온 것이었다.

-로빈슨 주교를 어떻게 설득해 촬영했나.
=오번신학대학교에서 종교, 미디어, 정의 실현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던 나는 주교님과 함께 일하게 됐다. 주교님이 언론을 통해 거침없이 진실을 토로하던 때부터 여러 해 동안 그를 지원했다. 4년간의 혹독한 촬영 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그때 쌓은 신뢰와 우정 덕분이다.

-<로빈슨>에는 성적 소수자인 LGBT, 에이즈 환자, 흑인 여성처럼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들의 상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주교님이 HIV 보균자들이 있는 의료원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그곳에서 한때 동성애는 죄악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하는 이성애자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HIV 보균자가 된 뒤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때 그녀는 오히려 동성애자들로부터 돌봄과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편견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상호 연관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큐멘터리가 사회적으로 공고화된 편견들을 깨뜨릴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하나. 혹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인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이야기다. 특히 영화는 현실에서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다. <로빈슨>은 선댄스영화제 시사회부터 9개월 뒤 미국 대선 때까지 미국 전역에서 상영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작게나마 미국인들이 평등한 결혼의 권리를 지지하도록 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믿는다.

-미국 사회의 차별과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풀어내왔다.
=25년 전 성직자인 아버지 앞에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그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느 누구에게도 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그 조언대로 산다. 이제 아버지는 생각을 바꾸셨다. 왜? 내가 활약하고 있다는 걸 아시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로빈슨>을 통해, 차별을 당하더라도 사회공동체 안에서 힘 있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 소수자들을 보면서 감동받고 생각을 바꿀 것이라 믿는다. 내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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