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똑바로 쳐다보라
2013-12-1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노무현의 죽음을 기억하기에 가능한 상업영화 <변호인>

정치적 사건에 휘말린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벼랑에서 뛰어 내려 자살함으로써 사건을 종결시키는 일이 전세계 역사상 몇번이나 있었을까. 없거나 희귀할 거다. 그 죽음은 이례적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방식 자체가 강력한 전언이다. 문화평론가 남재일은 2003년 8월경 <씨네21>에 자살의 유형에 관한 무척이나 인상 깊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먼 훗날 발생한 노무현의 죽음도 그의 지적과 관련 있어 보인다. 예컨대 강물에 뛰어내리는 사람이 남기는 전언이란 “우리는 가요. 찾지 말아요”라고 한다. 반면에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남기는 전언이란 “더 이상 할 말 없다. 똑바로 쳐다봐라”라고 한다.

자살을 결심한 누구라도 나의 주검이 혹은 죽음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남게 될 것인지 부지불식간에 떠올리게 될 것이므로 그 지적은 타당한 것 같고 노무현에게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그의 죽음으로 어떤 정확한 해결보다는 당장의 종결을 촉구했다. 사건의 종결 이후에도 그의 죽음은 더 오래 기억됐다. 역사 속에서 그의 죽음은 사라지는 것 대신에 쉽게 망각되지 않고 오래 똑바로 쳐다보도록 종용하는 무언가로 남게 된 것 같다. 이 사회에 드리워진 거대한 잔영이 된 것이다.

그의 죽음의 선택과 방식이 워낙 극적인 것이어서 언젠가는 영화가 피해가지 못하고 소재로 삼을 수도 있겠거니 예상해본 적은 있지만, 그의 한창때 시절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가 이렇게 먼저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변호인>은 노무현의 일대기 중 한 시기를 주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마지막 나날들이 영화화된 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그의 시작의 나날들이 영화화되었다.

시대는 1970년대 말, 80년대 초. 주인공은 송우석(송강호)이다. 부산 출신의 송우석은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 판사 자리까지 오른다. 대전지법 판사를 하던 그는 변호사로 직종을 바꾸고 출신지인 부산에서 변호사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친분과 출신성분이 중요한 그곳에서 그는 비빌 언덕이 없다. 송우석은 머리를 짜내어 부동산 등기, 세무 업무 관련을 도맡게 되고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열어 돈을 벌고 인기 변호사가 된다. 그즈음 고시생 시절에 돈이 없어 밥만 먹고 도망갔던 식당을 찾아 주인아주머니(김영애)에게 사죄를 구하고 단골집으로 삼는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의 대학생 아들(임시완)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잡혀 들어가고 불법 고문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한다.

노무현의 일생을 바꾼 ‘부림사건’

<변호인>은 알려진 것처럼 이른바 세속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해가는 노무현의 한 시기에 초점을 맞춰 상당수 소재를 끌어왔다. 당시에 노무현의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영화에도 다수 옮겨져 있다(이하 유시민이 정리한 <운명이다>에서 참조, 인용했다). 노무현은 실제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때에 밥값이 없어 몰래 도망간 적이 있다고 한다. “밀린 밥값 2천원을 갚지 못하고 몰래 집으로 도망쳐왔다. 울산역 플랫폼에서 누가 뒤꼭지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얼마 뒤 그는 다시 찾아가 막노동을 하여 번 돈으로 그 빚을 갚았다고 쓰고 있다.

박정희 유신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부산과 마산 지역의 대규모 시위, 이른바 부마항쟁이 일어났던 그때에도 노무현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잠자코 엎드려 지냈다고 한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이바지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방패 삼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즐겼다”고도 되어 있다. 이 시기에 노무현은 한때 노무현의 “호화(?) 요트”로 묘사되곤 했던 2인승 경주용 요트를 운전하는 취미를 들였고 그에 얽힌 일화도 영화에 한 토막 나온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노무현의 일생을 바꾼 계기로는 ‘부림사건’이 꼽힌다. <변호인>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등장한다. “내 운명을 바꾸었던 ‘그 사건’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판사로 변호사로 사는 동안 애써 억눌러왔던 내면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게 되었다.” 일명 부림사건. 전두환 정권이 부산 지역 지식인 및 학생들 22명의 독서모임을 국가전복을 꾀하는 반국가단체로 조작하여 실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불법 구금되어 아들의 소식을 알 길 없자 시체공시소까지 뛰어다녔다는 한 노모의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다.

노무현을 지우면 평범한 휴먼 드라마

주인공 송우석의 삶 속으로 노무현의 이러한 당시 일화와 감정들이 대거 들어와 서사를 이루고 있다. 배고팠던 시절 노무현이 밥값을 떼먹고 도망간 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송우석이 알고 지내는 국밥집 아주머니로 등장한다. 노무현은 막노동을 하여 그 돈을 갚았지만 송우석은 변호사로 성공한 뒤 그 집을 찾아 사죄하고 단골집으로 삼는다. 그 아주머니의 아들이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 얽혀 들어가게 되고 불법 구금 중 고문까지 당한다는 설정이 추가된다. 그러자 송우석이 그 학생의 변호를 맡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들어도 <변호인>은 영락없이 노무현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를 만든 제작 주체들의 자세는 좀 조심스럽다. 이것은 노무현의 이야기입니까, 물었을 때 부정하지 않지만 이것은 노무현의 이야기입니다, 라고 나서서 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황은 뭘까. 첫 번째는 외압에 대한 공포인 것 같다. 제작자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들이 받게 될지도 모를 외압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느끼게 된다. 실은 이상한 일이다. 현 정부를 직접 비판하는 일도 아닌데 우리는 이렇게 엄혹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완성됐고 개봉날까지 잡힌 지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정황도 중요해 보인다. 그 막연한 자세 자체를 대중영화의 전략으로 삼는 것이다.

가령 노무현과 이 영화의 관계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변호인>은 그냥 좀 손쉽고 평범한 휴먼 드라마처럼 보일 것이다. 영화의 초/중반부는 서민적이고 정겨운 변호사 송우석의 캐릭터가 전적으로 강조된다. 다소 유머러스한 장면들에서 시작하여 갈등과 더 깊은 갈등을 지나 폭발하고 다시 희망으로 나아가는 기승전결의 이야기 전형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상의 공식을 따르는 요즘의 많은 한국 대중영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런 식으로 즐기는 관객이 있기를 바라는 제작 관련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노무현과 이 영화의 관계를 알고 본다고 해도 영화의 수준이 갑자기 높아지진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는 누구라도 영화를 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노무현을 떠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송우석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가 걸을 때마다 노무현의 그 터벅터벅 걷는 특유의 걸음걸이가 떠오른 게 사실이다. 혹은 영화를 함께 본 동료는 후반부 흰색 수의를 입은 송우석의 모습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떠올렸다고도 말했다.

노무현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 작용이 이 영화를 더 좋은 영화로 만드는 것과는 무관할 테지만, 이 영화를 더 많은 관객이 보게 하는 데에는 기여할지 모른다. 대중적으로 무겁지 않은 흔한 소재와 방식 그리고 근 몇년간 한국사에 가장 중요했던 실존 인물 중 한명에의 연상이 그런 상업적 효과를 낳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변호인>은 노무현의 이야기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하고 싶었던 걸까. 대중적인 영화의 성공을 위해 노무현의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일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26년> <그때 그사람들>과는 다른 영화 밖의 잔영

노무현을 소재로 한 것처럼 전두환을 소재로 한 영화도 있었고 박정희를 소재로 한 영화도 있었다. <26>년과 <그때 그사람들>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당장에 하나는 짚을 수 있다. <26년>과 <그때 그사람들>의 전두환과 박정희로 짐작되는 인물들은 영화에서 명시된 이름을 갖지 않지만, <변호인>은 노무현에게서 비롯된 인물에게 송우석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부여했다. 앞선 두 영화에 비해 <변호인>이 거의 주인공 혼자 끌고 가는 영화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여기엔 다른 기대 효과도 있는 것 같다.

<그때 그사람들>과 <26년>은 영화에서 일부러 인물의 이름을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이야기상에서 전두환이나 박정희 이외의 다른 인물은 결코 되지 못하도록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적 호명 행위를 부추긴다. <변호인>은 다르다. 송우석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이것이 송우석의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다만 노무현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야기는 송우석의 것이고 인상은 노무현의 것이라는 식이다. 이걸 두고 우리는 송우석을 보니 노무현이 떠오른다고 말한 것이다.

<26년>과 <그때 그사람들>은 저들이 반드시 전두환과 박정희라는 인물 자체로 영화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변호인>은 영화 안에는 송우석이 있고 그 바깥이나 위에 노무현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중요한 건 바깥이나 위에 노무현이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거대한 잔영으로 어른거리기를 은연중 바라고 있는 것이다. 송우석을 드리우고 있는 잔영으로서의 노무현이다.

그런데 이 잔영은 실제로 어떻게 하여 거대해진 것인가. 과연 노무현이 생존해 있다면 그가 송우석을 뒤덮고 있는 잔영이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을까. 혹은 그가 병마로 자연사하거나 혹은 사고사한 것이라면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은 지금과 같았을까. <변호인>의 이야기는 인권 변호사로서 당당한 길을 걷게 된 노무현의 ‘시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감상하는 동안에는 내내 노무현의 ‘마지막’이 개입된다. 똑바로 쳐다보라는 주검의 전언을 남겼던 노무현의 비운의 마지막이야말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운명이다. <변호인>은 그 전언 아래나 안에서 역설적으로 가능해진 대중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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