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주원] 경쾌한 밸런스
2013-12-17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주원

드라마, 예능, 영화, 뮤지컬. 올해 주원의 행보는 경쾌한 스타카토 같다. 브라운관(드라마 <7급 공무원> <굿 닥터>, 리얼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 무대(뮤지컬 <고스트>)로, 그리고 다시 스크린(<캐치미>)으로. 데뷔 3년차의 배우 주원에게 지금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니라 부딪혀봐야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인듯하다. 하지만 변곡선처럼 느껴지는 그의 궤적이 품고 있는 공통의 단어가 있다. 그건 바로 ‘로맨스’다. “<7급 공무원>을 촬영하며 정말 재밌었다.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이 많이 반영되는 게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하는 장르이다 보니, 내 모습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캐릭터를 끌어안아야 하는 로맨스 장르에서 자유를 느꼈다.”

‘자유’를 느꼈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면, 잠시 시간을 돌려보자. 2012년은 배우 주원에게 진중한 한해였다. 무엇보다 그가 첫 주연을 맡은 대작 사극 드라마 <각시탈>의 영향이 컸다. 실수로 형을 죽인 뒤, 각시탈 가면을 쓰고 일본에 대항하는… 일본 경시청 순사.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모순인 이강토는 신인 배우 주원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알릴 좋은 기회였으나, 동시에 “매장면을 찍을 때마다 온몸이 아파올” 정도로 큰 감정의 기복을 겪게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2013년을 여는 작품으로 밝고, 유쾌하고, 산뜻한 로맨스가 있는 드라마 <7급 공무원>을 선택한 건, 이강토라는 인물을 떠나보내고 다시 활기찬 20대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을 채우기 위한 필연적인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7급 공무원>의 현장에서 받은 이 밝은 기운이 주원에겐 적잖은 활력소가 되었나보다. 로맨틱 코미디영화 <캐치미>와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고스트>가 그의 다음 선택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 세 작품은 주원의 ‘2013 로맨스 3부작’이다. 방영 시기로 따지면 <굿 닥터>가 앞서지만, 촬영과 오디션은 <캐치미>와 <고스트>가 먼저였으니 메디컬 드라마에 도전하기 이전에 로맨스 장르와의 한철을 보낸 셈이다. 올 연말 극장가와 무대에서 대중과 만나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주원이 ‘사랑’이란 테마를 어떻게 변주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거다.

주원의 2013년을 마무리하는 영화 <캐치미>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선보여온 일상의 모습과 가장 맞닿아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주원이 연기하는 호태는 “범인은 이성으로 잡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빈틈없는 프로파일러. 그러나 자신이 쫓던 뺑소니범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다녔던 첫사랑 진숙(김아중)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며 그녀에게 휘둘리게 되는 천진난만한 남자다. 제 발로 경찰서에 가겠다는 진숙을 “감기 나을 때까지만 함께 있자”며 붙잡고, 절도범인 그녀가 감옥에 가는 걸 막기 위해 남의 집 문 따는 방법까지 연습하는 호태의 모습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2일>의 정 많고 귀여운 막내였던 주원의 이미지가 겹친다.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면이 보여 나를 캐스팅했다고. 내가 생각하기에 나이 먹어도 남자는 똑같다. (웃음) 요즘 느끼는 감정이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네명 있는데, 스물일곱살이 되어 만나도 하는 짓은 똑같더라고. (<캐치미>의) 호태가 진숙을 오랜만에 만났어도, 여전히 예전의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그 속마음을 종잡을 수 없는 진숙은, 호태에게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여자다. <각시탈>의 진세연, <7급 공무원>의 최강희 등 작품마다 연인으로 출연하는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온 주원에게도 <캐치미>의 진숙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티격태격’하는 대사와 감정을 주고받는 연기는 해본 적 있으나, 진숙처럼 일방적으로 ‘사고’를 치는 여자 캐릭터에 반응하는 역할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숙이는 정말 엉뚱한 캐릭터다. 호태의 건담을 부러뜨리는 등 계속해서 사건을 만든다. 리액션이 이렇게 많은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타일러도 보고, 윽박도 질러보고, 몸을 크게 휘저으며 고집도 부려보고.<캐치미>는 고양이처럼 도도하고 날렵하게 극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김아중의 진숙에 맞서는 주원의 다종다양한 리액션을 볼 수 있는 영화다. 혹자는 다소 다혈질적인 호태의 모습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이미 호태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주원의 생각은 단호하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진숙의 행동이 좀 심한 것 같았다. 카드도 막 긁고! 그렇게 사고를 치는데, 큰 몸짓으로 항의하면 어떤가. (웃음) 그쪽이 하루라도 얌전한 날이 없으니, 이쪽도 자연스럽게 다혈질이 될 수밖에.”

가느다란 팔다리에 서늘한 눈매를 가진 주원은, 배시시 웃는 순간 가까이 닿기 힘들 거란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배우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악역으로 서서히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던 시절, 주원은 그의 이름보다 ‘강동원을 닮은 배우’로 더 잘 알려졌지만, 필모그래피를 늘려나갈수록 흡사한 외모의 선배 배우와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벗어난 강동원은 특유의 신비롭고 과묵한 이미지를 영화의 질료로 삼아 남자들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으나, 주원에겐 아직까지 현실에 발을 디딘 밝고 따뜻한 세계- 여성들이 공존하는- 가 더 어울리는 듯 보인다. <제빵왕 김탁구> 보다는 <7급 공무원>이, <각시탈>보다는 <굿 닥터>의 세계가 주원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가 태생적으로 지닌 건강하고 따뜻한 기운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올해 주원을 가장 빛나게 한 <굿 닥터>는 그가 “다시 제안을 받는다 해도 두말하지 않고 선택”할 작품이다. “가장 좋았던 건, <굿 닥터>가 따뜻한 드라마였다는 거다. 소아외과에서의 치열한 삶이 주가 된다기보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깨끗하게 치유되는 드라마라는 점에 끌렸다.”

<각시탈>과 마찬가지로 <굿 닥터>는 대사부터 감정, 몸짓까지, 주원으로서의 자아를 완전히 깨부수고 캐릭터가 지닌 것들로 다시 채워나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10살 수준의 사회성을 가졌지만, 공간 지각력과 암기력은 천재적인 소아외과 의사 시온은 배우로서 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주원의 도약을 체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두달 전 <굿 닥터>의 종영과 동시에 시온을 떠나보내고,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듯 공허함을 느꼈다는 주원은 “비슷한 장르인 <7급 공무원>에서 <캐치미>로 넘어갈 때 느끼지 못했던” 진입 장벽을 최근까지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고스트>를 무대에 올리려고 연습하는데, 내가 시온이처럼 걷고 있더라. 안짱다리로, 몸은 잔뜩 구부리고, ‘~습니다’체만 쓰면 시온의 말투가 나오고. 무대에선 ‘짝다리’ 짚는 게 예의가 아닌데. 4년 전까지 뮤지컬을 올리며 만들었던 습관들이 <굿 닥터> 이후 무대로 돌아가자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다행히 11월 말부터 <고스트>를 매일 공연하며 <굿 닥터>의 시온도 자연스럽게 떠나갔다. 주원은 2007년 <알타보이즈>로 배우의 꿈을 처음 펼쳤던 “고향 같은” 뮤지컬 무대로 돌아가, 영혼으로 떠돌며 혼자 남은 연인을 지키는 비운의 남자 샘에 빠져 있는 중이다. “‘짱’이다. 짱! 공연할 때 기분이 제일 좋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무대에 설 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다. 어떤 인물에 귀기울이느냐에 따라 같은 감정도 새롭게 느껴진다. 예전에 뮤지컬했을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매일매일 그에게 새로운 감흥을 주고 있다는 이 뮤지컬이 끝날 때쯤 주원의 가슴엔 또 얼마만큼 큰 구멍이 뚫리려나. 걱정부터 미리 하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 (캐릭터와) 깊이 사랑하고, 진하게 이별하고, 또다시 자신을 채워줄 새로운 인물을 재빨리 들여놓는 것. 그것이 배우의 낭만적이고도 비극적인 숙명이라는 걸, 주원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로맨스영화의 주인공처럼.

<캐치미>

magic hour

첫사랑 그녀를 다시 만난 날

“그 팩 좀 떼시고, (경찰서로) 가시죠.” “…감당할 수 있겠어요?” 뺑소니범을 뒤따라갔더니 얼굴에 팩을 붙인 여자의 집에 당도한 호태. 10년 만에 첫사랑 그녀와 조우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그다. 프로파일러로 승승장구하던 호태의 인생을 180도 바꿔버리는 진숙과의 재회 장면이, <캐치미>의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주원은 말한다. “감독님이 일부러 그 장면을 촬영 초반부에 찍으신 것 같다. 우리는 사실 호태와 진숙의 과거 회상 장면을 먼저 촬영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여자가 집어던진 팩이 바닥에 떨어지고, 호태가 그녀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은 온전히 배우 주원의 차지다. “즉흥적인 감정을 꺼내고 싶어, 아중 누나와 대사도 맞추지 않은 채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는 그의 얼굴이 어떨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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