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아사 버터필드] 블록버스터의 운명을 짊어진 소년
2013-12-23
글 : 이주현
<엔더스 게임> 아사 버터필드

<휴고> <내니 맥피2: 유모와 마법소동>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그 귀여운 꼬마가 이만큼 자랐다. 오슨 스콧 카드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엔더스 게임>에서 아사 버터필드는 “인류의 운명을 위해 선택된 영웅이자 천부적인 지능과 전술 능력을 갖춘 천재” 엔더가 되어 우주함대를 지휘한다. 우주함대가 아닌 한편의 블록버스터를 책임지게 된 아사 버터필드.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전한다.

8살. 부모님에게서 고운 아쿠아마린 색 눈동자를 물려받은 아사 버터필드가 처음으로 연기라는 것을 접한 나이다. 11살의 버터필드는 홀로코스트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서 브루노를 연기하며 연기 신동 소리를 들었고, 영국에 기가 막히게 연기 잘하는 꼬마가 있다는 소식은 금세 대서양을 건너 할리우드에까지 퍼졌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귀에도 아사 버터필드라는 이름이 흘러들어갔던지 14살의 버터필드는 스코시즈의 첫 3D영화인 <휴고>에서 휴고 카브레 역을 거머쥐며 일약 유명해진다.

6살. 오슨 스콧 카드의 SF소설 <엔더의 게임>의 엔더 위긴은 6살에 전투학교에 입학한다. 산아제한정책으로 두명만 출산 가능한 미래에서 유일하게 셋째로 태어난 엔더는 형과 누나의 장점을 고루 물려받았다. 뛰어난 지능은 물론이고 덩치 큰 상급생들에게도 기죽지 않는 대범함을 지닌 엔더는 외계 침공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인물로 낙점돼 우주함대 사령관으로 길러진다. 친구들의 시기와 그라프 대령의 신뢰를 한몸에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한 12살의 엔더는 결국 영웅 대접을 받기에 이른다.

아사 버터필드와 그가 연기한 엔더 위긴, 두 천재 캐릭터의 평행이론을 제시하려는 건 아니다. <엔더스 게임>을 연출한 개빈 후드 감독은 소설을 영화로 옮겨오면서 주인공 엔더의 나이를 살짝 바꾼다. “원작은 6살부터 12살까지, 훈련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엔더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선 방대한 시간을 압축해야 했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중간에 배우를 교체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면 차라리 12살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싶었다. 12살은 순진하지만 반항도 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엔더라는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어린 꼬마 배우에게 블록버스터의 운명을 맡기는 건 무리라는 현실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어깨에 들쳐메고 있는 12살이 있다면 그 이름 역시 엔더 위긴일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 엔더의 스승은 엔더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는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아. 인류를 대표하여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길 바랄 뿐이지. 생존이 최우선이고 행복은 그다음 순위다. 네게는 훈련과 배움이 첫 번째이고 승리가 전부다. 승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인류의 운명까진 아니지만 유명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블록버스터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부담감을 아사 버터필드 역시 안고 가야 했다. 1985년 출간된 오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은 출간 즉시 미국에서 100만부가 팔릴 만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1986년에는 해마다 최고의 SF판타지 소설에 주어지는 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그리고 30년 세월이 흘러 SF고전 반열에 오른 이 소설은 개빈 후드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영화화된다. <스타워즈> 시리즈에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할 만큼 “SF장르의 엄청난 팬”인 버터필드 역시 엔더를 연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엔더를 기대하고 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엔더가 재현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내게 조금 벅찬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엔더의 게임>의 팬으로서 버터필드는 냉정히 얘기한다. “영화가 원작보다 실망스러웠다면 나 역시 실망했을 것이다.” <엔더스 게임>의 시나리오가 버터필드의 마음에 꼭 들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레이저총을 쏘며 무중력 상태에서 날아다닐 수 있다는데, 뭘 더 바라겠나?”

사실 아역 배우에게 돌아갈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버터필드는 특수한 환경에 처한 캐릭터를 자주 만났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친구에게 철조망 너머로 빵이며 초콜릿을 나눠주던 꼬마(<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는 이내 기차 역사 내 시계탑을 관리하는 고아 소년(<휴고>)이 되었고, 때 묻은 고사리손으로 나사를 조이고 풀던 아이는 이제 우주복을 입고 외계 종족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엔더는 지금껏 버터필드가 연기한 그 어떤 인물보다도 복잡한 내면을 지녔다. “적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하게 되면 적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소년이라니. 엔더는 이기적인 동시에 희생적이고, 폭력적인 동시에 평화를 갈구하는 인물이다. 버터필드는 이 양면성을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버터필드의 눈을 통해 엔더의 동심을 보게 된다. <엔더스 게임>에는 완벽히 좌우대칭을 이루는 버터필드의 얼굴, 그중에서도 두눈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타이트숏이 자주 등장한다. 푸른빛이 도는 두눈, 창백한 피부, 근육 한점 붙어 있지 않은 빼빼 마른 몸. 병아리색 우주복을 입었을 때나 남색 지휘관복을 입었을 때나 버터필드의 신체 특징들은 가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엔더를 형상화하는 데 중요한 장치로 쓰인다.

촬영 중에도 키가 쑥쑥 자라 애를 먹었다는 아사 버터필드는 현재 178cm의 키를 가진 소년으로 훌쩍 커버렸다. 마틴 스코시즈, 해리슨 포드, 벤 킹슬리처럼 나이 차가 반백년도 더 되는 어른들과 함께 영화작업을 하며 조숙해진 버터필드는 서서히 귀여운 모습도 지워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날 이외에는 최대한 평범한 16살 소년으로 지내려 했다”는 버터필드지만, 배역을 고를 때만큼은 평범하지 않은 것에 이끌리는 것 같다. <엔더스 게임> 이후 그의 선택은 영국 코미디영화 <X 플러스 Y>. 영국 대표로 세계수학경시대회에 나가는 수학 천재 네이선이 그가 맡은 역할이다. 어려서부터 영화작업 틈틈이 작곡을 해왔고, 지난해에는 아버지, 형과 함께 아이패드용 게임도 개발한 버터필드.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길 즐기는 그가 왠지 오래도록 연기라는 놀이를 즐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라프 대령, 메이저 래컴, 앤더슨 소령(왼쪽부터).

엔더의 조력자들

엔더는 길러진다. 그라프 대령(해리슨 포드)과 앤더슨 소령(비올라 데이비스), 동료인 페트라(헤일리 스테인펠드), 스승인 메이저 래컴(벤 킹슬리)에 의해 엔더는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200%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겐 나폴레옹, 알렉산더가 필요하다”는 그라프 대령은 극 초반, 엔더를 동료들로부터 고립시켜 그의 리더십을 시험한다. ‘상사가 못살게 구는 사람은 동료들의 사랑을 받고, 상사가 좋아하는 사람은 동료들의 미움을 받는다’는 세상살이 이치를 터득한 12살의 엔더(12살의 우리는 무얼 했던가!)가 자기 앞에 닥친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심리학자인 앤더슨 소령은 엔더의 생각과 마음을 부모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인물이며, 샐러맨더 부대에서 만난 페트라는 엔더에게 사격 기술 등을 가르쳐주는 동료다. 과거 외계 종족 포믹으로부터 지구를 구한 영웅 메이저 래컴은 엔더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해리슨 포드, 비올라 데이비스, 헤일리 스테인펠드, 벤 킹슬리는 아사 버터필드의 훌륭한 조력자였다. 특히 해리슨 포드는 “아사 버터필드가 내게서 배우는 것처럼 나 역시 그에게서 배운다”며 어린 배우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대배우의 마음가짐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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