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후쿠야마 마사하루] 망가져본 적 없는 남자
2013-12-24
글 : 김보연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후쿠야마 마사하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연기한 료타를 “져본 적이 없는 남자”로 묘사한다. 그는 정말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남자의 초상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낸다. 바른 자세에 단정한 머리, 서두르지 않는 낮고 침착한 말투, 그리고 약간 쏘아보는 듯한 흔들림 없는 눈빛까지. 그런 후쿠야마 마사하루에 대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그는 지금까지 매일 만날 것 같은 일상적인 사람들, 이를테면 아버지 같은 인물을 연기한 적이 별로 없어요.” 실제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비일상적인 인물을 더 많이 연기했고, 그런 역할들에서 더 빛을 발했다. 갓 데뷔했을 때는 <한지붕 아래>(1993)같은 가족 드라마에서 경력을 쌓았지만(그런데 여기서도 똑 부러진 이미지의 의사를 연기했었다) 그의 대표작은 결국 추리물 <갈릴레오> 시리즈(2007, 2013)와 료마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던 대하사극 <료마전>(2010)으로 남았다. 즉 논리와 공식에 반쯤 미친 완벽주의자를 연기하거나 일본인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연기하며 경력을 쌓아온 것이다. 다시 말해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아버지를 연기한 건 오히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아버지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다른 어떤 캐릭터보다 더 큰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과연 그는 료타라는 이름의 아버지를 어떻게 연기해냈을까. 그것도 6년간 키워온 아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아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버지를 말이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그렇다고 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대단한 연기 변신을 주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독은 오히려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평소 갖고 있던 지나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가족 드라마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 뒤 그때 발생하는 미묘한 불협화음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다시 말해 가장 아버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아버지의 자리에 불러온 뒤 그가 어떻게 그 역할을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실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반인’보다는 이상적인 연예인의 이미지에 가까운 사람이다. 1969년에 태어난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89년 데뷔한 이래 20년이 넘도록 별다른 스캔들 없이 계속해서 전성기를 이어오고 있다. 예능에 출연해서도 굳이 일부러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수만명이 모인 콘서트장에서도 감정 과잉 없이 담담하게(또는 절도 있는 퍼포먼스와 함께) 노래한다. 게다가 그는 전문적인 수준의 사진 작가이며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쓴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이런 그에게 대중이 보내는 인기도 대단한 것이어서 <오리콘스타일>이 뽑은 ‘남자가 닮고 싶은 얼굴’에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여성잡지 <앙앙>이 뽑은 ‘안기고 싶은 남자’에서도 15년이 넘도록 2위를 차지했다. 별의별 차트가 다 있는 일본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긴시간 동안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오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사람이 가진 이미지를 잘 설명해준다. 게다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 중 하나인 료마를 연기한 몇 안 되는 배우이다. 그와 라이벌로 자주 언급되는 기무라 다쿠야가 과연 료마를 연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후쿠야마 마사하루만의 완벽하게 반듯한 이미지는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런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올 뿐 아니라 묘한 방식으로 더 강화하기까지 한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는 ‘쿨’이죠. 나는 그가 말을 할 때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게 했어요. 깔보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이라고 했고,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게 했어요.”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따뜻하고 자상한 ‘이상적인’ 아버지상과는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역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료타를 연기하다보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나왔어요.” 이때 그가 말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영화를 본다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모습들 말이다. 그는 절대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으며, 아들이 피아노에 흥미를 보이지 않자 뾰족한 가시를 품은 어조로 아이를 압박한다. 그리고 6년 동안 다른 사람의 아들로 자란 ‘친아들’이 처음으로 집에 온 날, 잔뜩 움츠러든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히고 교육시키는 모습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철저하게 날카로운 이미지가 단적으로 잘 드러난 장면이다. 어떤 아버지가 오늘부터 같이 살기로 한 7살 아들을 의자에 앉히고 “빨대를 씹지 말라”고 훈계할 수 있을까.

이것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우리가 수없이 보아온 캐릭터들, 즉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냉정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숨긴 인물을 연기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상투적인 캐릭터의 한 전형이 되어버린 이런 인물형이 어쩌면 배우로서 연기하기에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리고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처음에 설정한 료타의 성격과 이미지에 어떤 ‘반전’도 허락하지 않은 채 이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때 매 순간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료타의 진심을 보여준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연기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더욱 단단하게, 그리고 더욱 사실적으로 만든다. 매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상에 쉽게 빠지지 않던 그가 마지막까지 반듯한 자세와 차분한 말투로 내린 선택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회의 몸부림이나 터져나오는 오열 없이도 자신만의 연기로 해석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결국 료타에게서 끌어내고 마는 것이다. 그는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구태여 바꾸지 않고서도, 아니 오히려 그 이미지를 지킴으로써 료타라는 인물을 더욱 복합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항상 정답을 찾아낼 것 같은 인물이 ‘두명의 아들’이라는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거의 처음으로 아버지의 자리에 서서 고민할 때 그의 혼란스럽고 막막한 심정은 관객에게 생생히 전해진다. 그리고 이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지난 시간 쌓아온 시간과 그를 통해 빚어낸 연기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응축된 감정일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합류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영화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 중 이 영화가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이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이런 모습의 아버지를 연기할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갈릴레오>

magic hour

차도남의 ‘손가락’짓

지금의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가진 이미지를 완전히 각인시킨 작품이자, 그의 매력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낸 작품은 TV 드라마 <갈릴레오> 시리즈다. 2007년에 첫선을 보인 뒤 최근 두 번째 시즌을 발표했으며 우리에게는 그 극장판에 해당하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시리즈에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괴짜 수학자인 유카와를 연기한다. 100명이 넘는 여자들의 뜨거운 눈빛 속에서도 오직 특이한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 그는 장르적으로 과장된 인물인 동시에,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가진 차가운 매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사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특히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취하는 특유의 포즈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한 중독성이 있다. 남들이 따라하면 코미디지만, 그가 손가락을 펼치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로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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