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비극의 소환. <청야>는 1951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지윤(안미나)은 치매에 걸린 자신의 할아버지 이 노인(명계남)에게서 빛바랜 사진 한장을 발견한다. 사진 속 어린 소녀를 찾아 두 사람은 거창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인 차 PD(김기방)와 만난다. 차 PD는 학살과 관련이 있다고 직감하고 이 노인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이 노인은 학살로 가족을 잃은 마을 사람들을 만난 뒤 “잘못했어요”를 되뇐다. 차 PD와 이 노인, 두 사람 사이에서 지윤은 끔찍한 비극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당시 국군으로 양민 학살에 가담했음을, 사진 속 어린 소녀는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가 어떻게든 숨겨주고 싶었던 아이였음을.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외면하지 않았다면 기억되어야 한다’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명확하고 일관된 <청야>의 메시지다. 우리 사회가 눈감은 폭력의 역사를 어떻게 다시 재현하고 전달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을 영화는 자주 내보인다. 차 PD의 다큐멘터리에 거창 학살 피해자들의 실제 인터뷰 영상이 담길 때, <청야>는 관객에게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 극중에서 차 PD의 다큐멘터리가 시사회에서 상영될 때도 실제 전쟁 기록 영상들이 덧붙여지고, 희생자 대부분이 부녀자, 아이, 노인들이었던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내레이션(문성근)을 통해 일러준다.
다만, 비극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환기하고자 하는 이러한 <청야>의 방식이 유효하다고 단언하긴 쉽지 않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그려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복잡했을 지윤의 감정과 역사적 상흔이 상징적인 화해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