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
[영하의 날씨] 자유 없는 자유
2013-12-26
글 : 김영하 (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 김현영 (일러스트레이션)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를 보고 떠올린 우리 사회의 ‘헝거게임’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나는 숭례문 근처의 한 회사에서 영어회화 테이프를 파는 일을 시작했다. 며칠간의 세일즈 교육은 세상물정 모르던 대학생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하루 종일 세일즈, 세일즈 노래를 듣다보니 세상은 물건을 파는 사람과 그것을 사는 사람, 딱 두 종류의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사는 말했다. 세일즈를 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늘 뭔가를 팔고 있다. 삶의 매 순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세일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잘 파는 게 좋지 않겠나?

북극에서도 냉장고를 팔 수 있다는 유의 세일즈 성공담들과 망설이는 가망 고객들을 어떻게 후려칠 것인가 하는 실전 요령들을 습득한 뒤 나와 동료들은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개량한복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성이 팀장이었다. 우리 실적 중 일부를 자기가 떼어먹는 다단계식 조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우리의 전화통화 하나하나에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대다가 행여 관심을 보이는 고객이 있으면 상담 약속을 잡아 집으로 찾아갔다. 세일즈맨이 최초의 오더를 받는 것을 ‘아이스브레이크’라 부른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개량한복 팀장은, 아이스브레이크까지가 힘들지 그 이후부터는 술술 풀린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며 우리를 독려했다. 나와 동료들은 은근히 경쟁심을 불태우며 팀장이 준 주소록을 보고 전화를 걸어댔다. 그러나 얼음을 깬다는 게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일단은 고객이 우리 얘기를 듣게 해야 했고 집으로 가도 된다는 허락도 받아내야 했다. 집에 가서는 영어회화 테이프를 들려주며 이게 왜 거금을 들여 당장 사야만 하는지를 납득시켜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우리 중 한명이 드디어 고객과 약속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사무실로 돌아온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자리보전을 할 지경인 할머니가 친구들과 오토바이만 타고 다닌다는 말썽쟁이 손자의 공부를 위해 영어회화 테이프를 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단칸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쌈짓돈을 차마 우려낼 수 없었던 그는 들고 갔던 영어회화 테이프 상자를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사정을 전해들은 팀장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나왔다.

“네가 뭔데 고객이 영어회화 테이프가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해? 가난한 사람은 영어 배우면 안 되나? 오토바이 타고 놀러다니던 10대 손자가 어느 날 갑자기 영어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나중에 성공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일개 세일즈맨이 왜 멋대로 그런 가능성을 부정해? 네가 신이야? 고객이 영어회화 테이프가 필요하다잖아? 근데 왜 안 팔아? 우리가 깡패 데려가 강매했니? 고객이 자유롭게 선택을 한 것을 네가 왜 방해해?”

그녀는 ‘선택’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어 강조하더니 이어 자신의 사례도 곁들였다.

“내가 이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야. 상담 약속을 하고 가보니 산동네 단칸방에 온 식구가 살고 있었어. 자그마치 일곱이었어. 거기서 3세트를 팔았어. 초급, 중급, 고급. 내 말 명심해. 집에 전화가 있다는 건 중산층이란 뜻이야.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있다는 거야. 돈이 진짜 없어봐? 전화를 어떻게 놔?”

자본주의 사회의 마케팅이라는 것은 고객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것도 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면 고객에게 이미 있을 것이다. 아직 안 샀다는 것은 아직 그게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팀장은 고객이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식으로 눙치고 있었다. ‘자유’와 ‘선택’이라는 멋진 단어는 그 순간부터 나에게 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세일즈맨은 고객이 물건을 사도록 유혹할 자유가 있고 고객은 그 유혹에 넘어갈 자유가 있다. 이때의 자유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정치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저항이 없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제 뜻을 이루겠다는 힘의 논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한 이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그 후예들은 원주민의 땅을 차지할 자유를 찾아 총을 들고 서부로 향했다. 메이플라워호의 자유가 정치적 해방으로서의 자유라면 서부로 향한 이들의 자유는 약탈의 권리를 의미한다. 자유가 이렇게 힘의 논리를 포장하는 명분에 불과한 사회에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적 세계관이 진리가 된다. 초강대국 미국이 걸핏하면 들이대는 가치가 ‘자유’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충분히 팔 수 있었던 상품을 양심 때문에 차마 팔지 못한 내 동료 같은 사람은 미국식 ‘자유’가 횡행하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칸트적 도덕률은 이런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유롭게 타인을 이용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사람, 타인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팀장의 질책을 묵묵히 받아내던 동료는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나는 한달이 다 되어서야 겨우 아이스브레이크를 했다. 아무 소득도 없이 그래도 한달을 버틴 것은 더운 여름에 쏟아부은 지난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매몰비용은 매몰차게 무시하라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나는 단 한질이라도 팔아서 내가 무의미하게 여름방학을 보내지 않았다는 위안을 얻고 싶었다. 다행히 불광동에 사는 한 고객이 내 물건을 사주었다. 집장사 집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헤매다 겨우 찾아들어간 고객의 집은 작고 아담했다. 그들이 건네준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나는 영업을 시작했고 잠시 뒤 순조롭게 계약을 마쳤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팀장은 다른 동료들 들으라는 듯 꽤나 요란하게 내 아이스브레이크를 축하해주었다. 최소한의 목표도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몇주가 지나도 수당이 입금되지 않았다. 불과 10만원도 안 되는 돈이었지만 한달의 시간과 맞바꾼 것이었다. 나는 뻔질나게 전화를 걸어 입금을 독촉했지만 팀장은 이런저런 변명으로 받아넘기거나 내 전화를 회피했다. 결국은 회사의 상급자와 매우 불쾌한 통화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수당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함께 그 일을 시작했던 대학생 동료들 중 한달을 넘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개중에는 몇 세트를 판 친구도 있었지만 실은 지인이나 친척이 사준 것이었다. 어쩌면 그러라고 우리를 고용한 것이었는지 몰랐다. 몇달 뒤 신촌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료에게 수당과 얽힌 후일담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팀장은 수당을 떼어먹을 ‘자유’를 여러 차례 행사했고 나만큼 집요하거나 독하지 못했던 어떤 동료들은 더럽고 치사해서 수당을 떼어먹힐 자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여름 ‘헝거게임’의 승자는 개량한복을 입은 팀장이었겠지만 그녀라고 언제까지 승자였을까 싶다. 그녀 위에는 그녀보다 더 독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그 위에는 또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때는 1987년 6월항쟁 직후였지만 나와 내 대학생 동료들 누구도 이런 시스템을 바꿀 엄두도 내지 않았고 바꿔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내 몫의 알량한 수당만 챙기고 달아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모두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 같은 ‘큰 문제’만 바뀌면 다른 소소한 문제들은 저절로 바뀌리라 믿었던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대기업이 주도하는 우리 사회의 ‘헝거게임’은 슬금슬금 전면적으로 확대되었고 어느새 우리 모두는 아레나에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면서도 이런 상황이 개선될 거라는 희망 따위는 감히 품지 않는 그런 시대에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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