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출연했던 작품 수만큼의 인생을 살고, 맡았던 배역의 종류만큼 다양한 얼굴로 기억된다. 지난 12월15일 81살로 영면에 든 피터 오툴의 얼굴은 어떻게 기억될까. 당신이 20대라면 <트로이>(2004)에서 아킬레스와의 대결로 숨진 아들 헥토르의 얼굴을 부여잡고 울던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로 기억할 것이다. 30대라면 <마지막 황제> 푸이의 영국인 가정교사 존 스톤 경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40대 이상에게 피터 오툴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용감한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다. 정의감에 불타 사막을 내달리는 풍운아의 깊고 푸른 눈빛은 70mm 필름으로 촬영된 광활한 사막 풍경만큼이나 결정적인 장면이다.
1932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피터 오툴은 출판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요크셔 이브닝 포스트>의 기자로 활약했지만 이내 해고됐다. 이후 잘생긴 외모를 살려 배우를 해보라는 편집장의 조언에 따라 영국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한 오툴은 55년 브리스틀 올드빅에서의 첫 작품 <햄릿> 공연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다. 귀족적인 외모를 바탕으로 한 정통 정극 연기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TV영화 <스칼렛 핌퍼넬>로 차츰 이름을 알리던 중 62년 운명적인 작품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난다.
말론 브랜도와 앤서니 홉킨스를 제치고 따낸 이 배역으로 그는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명연기를 펼쳤고 실제 T. E. 로렌스보다 훨씬 훤칠한 188cm의 키에 시원한 이목구비 덕분에 지나친 미화라는 기분 좋은 오명을 얻기도 했다. 곧이어 리처드 버튼이 베킷 대주교로 출연한 <베킷>(1964)에서 헨리 2세를 연기해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며, <겨울의 라이언>(1968)에서 캐서린 헵번의 상대역으로 다시 한번 헨리 2세 역을 소화해 26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전성기를 누렸다. 주로 왕과 귀족 역할을 맡았던 건 그의 귀족스러운 외모 덕도 있지만 그만큼 정극 연기에서 다져진 그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대체 불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밌는 건 피터 오툴이 정반대의 광기어린 이미지로도 탁월한 성취를 거뒀다는 점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T. E. 로렌스나 <겨울의 라이언>의 헨리 2세가 온전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은 귀족적인 피터 오툴의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72년 아서 힐러 감독의 뮤지컬영화 <맨 오브 라만차>에서 그가 맡은 돈키호테는 말끔한 이미지의 피터 오툴만을 기억하는 이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격정적이고 광기에 가득 찬 연기로 찬사를 받았다.
어쩌면 그 시절 연기에 묻어나는 광기는 점점 피폐해져가는 그의 영혼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70년대는 피터 오툴에게 부친의 죽음, 이혼 등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이 때문에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는가 하면 급기야 알코올 중독과 위암 판정으로 잠시 연기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활에 성공한다. 80년 리처드 러시 감독의 <스턴트맨>에서 여배우를 사랑한 스턴트맨 역할로 화려하게 복귀한 그는 이후 인터뷰를 통해 “오직 연기가 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본인의 염원대로 연극 무대에 복귀한 건 물론이거니와 리처드 벤자민 감독의 간절한 요청으로 출연한 코미디영화<아름다운 날들>(1982)로 7번째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아마도 피터 오툴은 영원히 푸른 눈의 T. E. 로렌스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 빛나는 순간조차 피터 오툴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박제되는 대신 대중과 함께 늙어가는 배우의 삶을 선택했다. 유난히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어 무려 7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오른 뒤 2003년 공로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그 멋진 녀석(남우주연상)을 정정당당하게 받아보고 싶다”며 한 차례 수상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 뒤 2006년 노배우의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비너스>로 8번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건강상의 문제로 2012년 한 차례 은퇴 선언을 한 뒤에도 병세가 호전되자 곧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캐서린>(2014년 개봉예정)에 출연하는 등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원하는 작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던 영원한 배우. 결국 피터 오툴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멈추게 한 것은 죽음뿐이었다. 화려한 순간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빛나는 푸른 눈동자만큼이나 사려 깊은 주름이 사랑스럽다. 그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오직 배우로 살았던 한 남자의 일생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그에게 바쳐진 추도문처럼 “피터 오툴의 일생일대의 연기는 다름 아닌 피터 오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