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묘했어.” 도니 에이조프(조나 힐)를 처음 만난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반응에 한표를 더하고 싶다. “지나치게 하얀 이라든지 백인 상류층처럼 보이려고 쓴 뿔테 안경”으로 요약되는 그의 별종 외모는 나름 꽃중년 디카프리오도 잠시 잊게 한다. 그런데 다음 신이 더 가관이다. 조던은 그에게 묻는다. “아내가 사촌이라던데, 진짜야?” 도니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와이프 아버지가 우리 엄마의 오빠야.” ‘개’족보를 재배치하는 그의 독창성에 흠칫 놀라는 사이, 그가 “친구들이 서로 따먹겠다고 난린데 눈 뜨고는 그 꼴을 못 보겠더라. 그래서 그냥 결혼해버렸어. 어차피 누군가 따먹을 거라면 내가 따먹는 게 낫잖아?”라고 되묻는다. 이쯤 되면 관객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뉜다. 벌써 킥킥대기 시작했거나, 미친놈이라며 혀를 차거나, 도니에 대한 호불호를 놓고 결정장애 상태이거나. 첫 번째 관객은 이미 힐의 매력을 알고 있고, 두 번째 관객은 힐에 대해 더 궁금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으며, 세 번째 관객은 힐의 그로테스크한 코미디에 점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힐이 처음부터 배우를 꿈꾼 건 아니다. 대학 시절 극작을 하면서 자신이 외려 연기에 더 큰 열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그의 등을 떠밀어준 인물이 더스틴 호프먼이다. 당시 힐의 여자친구의 아버지였던 호프먼의 소개로 그는 <아이 하트 헉커비스>의 단역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그의 연기 인생에 진정한 시발점이 된 작품은 두 번째 출연작, <40살에도 못해본 남자>였다. 이베이 판매용 물품창고에서 스트립걸이 신을 법한 은색 반짝이 하이힐을 사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엉뚱한 손님이 그였다. 여전히 단역이었지만, 그 인연으로 철 못 든 남자들의 유토피아, 주드 애파토우 사단의 일원이 됐다. 세스 로건, 제이슨 세걸, 마이클 세라 등은 함께 코미디를 갈고닦기에 더없이 ‘좋은 친구들’이었다.
주드 애파토우 사단 배우 겸 작가들 사이에서 그는 종종 비호감 지질이 캐릭터를 신중하고 날카롭게 다듬어내는 능력으로 두각을 보였다. 몸매는 푸근하나 이목구비와 목소리는 결코 푸근하지 않은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재능은 첫 주연작인 하이틴 코미디 <슈퍼배드>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미워할 수 없는 ‘너드’미로 무장한 ‘고딩’들 사이에서 최고 진상 캐릭터 세스를 연기했다. 혼자 대입에 실패하고 여자한테 인기도 꽝인 세스는 관객의 동정을 사기 쉬운 조건을 두루 지녔으나, 힐은 그를 거부했다. 대신 그는 ‘니들이 평균 이하 남자를 알아?’라고 따져 묻기라도 하듯 ‘보통의 존재’의 상스러운 진실을 낱낱이 까발렸다. 놀라운 건 결국 그 상스러운 진실로부터 안쓰러운 진심까지 건져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봉 당시 <LA타임스>는 “뉘앙스를 세련되고 섬세하게 다룰 줄 아는” 그의 코미디 감각을 높이 사면서, 그와 세라를 “로렐과 하디, 애포트와 코스텔로, 애크로이드와 벨루시 같은 고전적인 코믹 듀오”의 후예로 점찍었다.
‘똘끼’ 충만한 ‘언더독’들의 행진은 계속됐다. 모건 프리먼이란 대배우를 무례일색으로 대하는 운전 담당 연출부원(<텐 아이템 오어 레스>), 이웃에게 자살 계획을 늘어놓는 우울증 환자(<거짓말의 발명>), 착한 척하는 이기주의적 코미디언(<퍼니 피플>), 록스타 앨더스 스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오타쿠(<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22살이나 먹어서도 엄마와 살며 엄마의 연애를 훼방하는 마마보이(<사이러스>), 고등학교 중퇴 뒤 경찰 자격시험에도 모조리 떨어진 자경대 워너비(<왓치>) 등 그는 관객을 당황시킬 정도로 날선 ‘병(신스러운)맛’이 일품인 괴짜 캐릭터들을 자주 연기했다. 그나마 그 병맛을 좀더 상업적으로 다듬은 영화가 <더 시터>와 <21 점프 스트리트>였다. 삼인삼색 말썽쟁이들 때문에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내는 막장 베이비시터와 고등학교 잠복근무의 재미에 홀딱 빠진 다 큰 경찰관은 그가 맡았던 배역 중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기 쉬운 인물들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필모그래피의 무게중심이 병맛 코미디에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머니볼>의 피터 브랜드는 완벽한 게임체인저였다.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야구광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승률만 올려놓은 게 아니라 힐의 연기 경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웃음기와 군더더기를 쫙 뺀 채 주어진 각본 안에서 브래드 피트와 함께 침착하고 차분하게 기승전결을 쌓아냈고, 급기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그런 그의 연기를 두고 피트는 “우리는 그를 코미디언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코미디는 페이소스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힐에게는 늘 코미디만큼 드라마도 중요했던 것 같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동경하는 배우들에 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영웅들은 빌 머레이와 더스틴 호프먼이다. 그 두명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솔기 없이 매끈하게 이어낸다. 그리고 존 C. 라일리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도. 그들은 코미디적이지도 드라마적이지도 않은 위대한 배우들이다.”
한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도니 에이조프는 힐이 그간 갈고닦아온 희비극의 기술을 집대성해놓은 캐릭터다. 우선 도니는 인생을 가벼운 농담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철부지 망나니로, 힐이 앞서 연기한 코미디 캐릭터들과 적잖이 닮았다. 그래서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알고 있고, 이런 세계를 알고 있다”고 끈질기게 출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솜 대신 마약으로 속을 채워넣은 ‘19곰 테드’ 같은 도니는 겉으로만 번드르르한 조던 옆에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조던의 퇴폐한 내면을 낱낱이외면화한다. 백미는 파티 중 자위하는 장면과 퀘일루드를 다량복용하고 조던과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다. “스코시즈 영화에서 코카인하는 걸 슬로모션으로 찍혀보는 건 모든 배우의 꿈 아닌가.” 그리 묻는 힐은 한때 월스트리스 꼭대기에서 ‘톱 오브 더 월드’를 외쳤던 사내들이 몰락해가는 풍경을 누구보다 살벌하고 질척하게 칠해낸다. 그는 스코시즈가 “미치도록 웃기고 매우 격렬하며 때로는 무섭기까지 한 장면”들을 요리해내는 데 중요한 재료였다.
돌이켜봤을 때, 도니와 피터를 제외하면 힐이 연기한 인물은 대부분 가진 것이 많지 않거나 어딘가 결함이 있는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허전한 구석을 적당히 감싸안기보다 예리하게 더듬어낸 덕분에 힐은 함께 일한 배우들로부터 일관되게 “용감한” 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다. 조 페시를 닮은 얼굴, 잭 블랙의 몸매와 진지함, 스티브 카렐의 능청스러움과 적나라한 표현방식, 존 터투로의 광기 어린 눈빛을 마구잡이로 몽타주해낸 것 같은 배우 조나 힐. 그의 희비극에 대한 섬뜩할 정도로 날선 감각은 그러나 누구의 것도 아닌 조나 힐만의 것이다.
magic hour
이런 병X 같은, 깔깔깔
조나 힐의 연기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즉흥연기다. 사실 주드 애파토우 사단 출신이라면 누구든 즉흥연기에 능숙한 편인데, 그중에도 힐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준이다. 오죽하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마틴 스코시즈 영화 중 “즉흥연기를 가장 많이 시도한 영화가 됐다”는 얘기가 들릴까. 그런 맥락에서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한 <디스 이즈 디 엔드>는 힐의 만개한 즉흥연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종말 직전의 할리우드가 배경인 이 황당무계 B무비에서, 힐은 착한 척하느라 바쁜 위선적인 배우 조나 힐을 연기하다 외계에서 온 괴물에게 욕보일 뻔한 뒤 무려 좀비로 변태한다. 간만에 오랜 친구들과 다시 뭉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농담할 수 있는 재미”를 실컷 누렸다는 그의 말마따나, 병맛 코미디의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