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혈기왕성한 청춘의 연애와 싸움 <피끓는 청춘>
2014-01-22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추억은 늘 ‘방울방울’하다.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당시에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일마저 지나고 나면 다 재밌는 얘깃거리가 된다. 요즘 스크린 위에 1980, 90년대가 자주 소환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숨통을 조였던 1980년대의 정치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는 아기자기하고 소박했던 지극히 사적인 향수에 열광한다. <피끓는 청춘>은 후자에 속하는 1980년대를 그리고 있다. <품행제로>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지만 보편화된 추억의 공간인 ‘서울’을 버리고 과감하게 충남 ‘홍성’을 택했다.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사투리는 조폭언어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표준어의 타자 자리를 완벽하게 탈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사투리가 그것도 경상도나 전라도에 비해 영화적으로 재현될 기회가 적었던 충남 사투리가 전면에 부상한다.

영숙(박보영)과 중길(이종석)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영숙은 홍성농고의 학교 짱으로, 중길은 희대의 카사노바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학교 짱인 영숙이 중길을 마음에 두고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영숙의 관심과 배려는 싸움과는 담쌓고 사는 중길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며 원치 않는 구타에 휘말리는 계기만 제공할 뿐이다. 홍성농고에 ‘폐병’ 앓는 서울소녀 소희(이세영)가 전학 오고 중길은 한눈에 반한다. 쉽게 마음과 몸을 주던 농고 소녀들과 달리 소희는 고도의 밀당 전략을 펼치고 중길은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소희를 좋아하는 중길과 중길을 좋아하는 영숙, 여기에 영숙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으며 마음까지 두고 있는 홍성공고 짱 광식(김영광)까지 얽혀들면서 각종 화학작용과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는 계속해서 뛰고 있는 한 소녀다. 농고 운동장을 사시사철 아침이나 낮이나 누가 연애를 하든 실연을 하든 달리고 심지어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도 바람처럼 가르고 사라진다. 나중에 육상선수가 된 그녀는 인터뷰에서 “그냥 힘이 남아서요. 뛰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좋아요”라는 말을 숨가쁘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 캐릭터는 이 영화의 주제이자 형식이다. 피끓는 청춘들이 미친 듯이 치고받고 하는 것도 다 힘이 남아서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다 힘이 남아서다. 영화 자체도 장면 장면에 집중할 뿐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혈기왕성한 청춘의 연애와 싸움을 낄낄대고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결승점에 도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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