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아날로그 정서를 찾아라
2014-02-07
글 : 정예찬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피끓는 청춘> 이하나 미술감독

Filmography

미술감독 <피끓는 청춘>(2014) <렛 미 아웃>(2012) <봄, 눈>(2011) <아부지>(2009) 미술팀장 <고지전>(2011) <핸드폰>(2009) 미술팀 <어깨너머의 연인>(2007) <흡혈형사 나도열>(2006) <달마야 서울가자>(2004)

“전체 스탭들 중 그 시절을 제대로 살아본 사람은 딱 세명밖에 없었다.” 1982년 충청도가 배경인 <피끓는 청춘>에서 이하나 미술감독이 맡은 과제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와 공간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TV, 잡지, 신문기사, 광고 등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자료를 닥치는 대로 모았”음은 물론이고 “주위 어르신들의 고증을 통해 80년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공간이 갖는 리얼리티가 중요한 영화지만 1982년은 마지막 교복세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충청도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많이 다뤄보지 않은 공간적 배경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세대만이 갖는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영화에 담아내는 일이 더 중요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영화에는 80년대 학생들의 통학열차와 중길(이종석)의 작업 공간인 낡은 중국집의 쪽방, 남자들만의 공간인 중길 패거리의 아지트, 나무 의자에 흰색 천을 씌운 시골 극장 등이 등장한다. 수많은 장소 중 그녀가 가장 공들여 표현한 공간은 ‘맛나당 베이커리’다. 빵집의 의미는 퇴색한 지 오래지만 그 당시 청춘들에게는 로맨스가 꽃피는 공간이었다. 원래 쌀집이었던 자리를 빌려 빵집으로 개조하던 중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우리가 옛날에 봤던 빵집이랑 똑같이 생겼네그려. 빵은 언제부터 파나유?”라는 말에 모든 스탭이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정말 어렵게 찾아낸 공간인데 재개발에 들어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쉬운 마음이 앞서지만 마지막 영상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다.”

대학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MTV’라고 불리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자란 세대다. 그 영향을 받아 CF와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일하며 많은 분야에서 미술 작업을 해온 그녀는 “영화는 캐릭터가 빠져도 그 공간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미술 스탭만의 뿌듯함이 따로 있다”며 그 매력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사극이나 시대극은 모든 미술 스탭이 도전하고 싶어 하는 영역이다. 살아보지 않은 시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직접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이번 영화는 “자료를 찾던 중 80년대 초반부터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화면조정시간에 나오는 ‘컬러바’의 색상들로 공간을 채웠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극도 자료 조사는 필수다. “현대극이라고 해서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촬영시기와 개봉시기의 시간차가 있다. 패션지를 통해 몇 개월 뒤의 트렌드를 찾아내고 디자인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의 목표는 “많은 것을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보게끔 하는 공간,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장르에 따라 미술 작업의 방향은 바뀔 수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매번 같은 목표를 향한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다음 작품으로 배우 정우성이 연출을 맡은 단편 <킬러 앞에 노인>을 선택했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영화다. 채워넣는 미술이라기보다는 비워내는 영화이기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꼭 정우성 감독님때문만은 아니다. (웃음)” 그녀의 손길에서 존재하지 않던 또 다른 공간이, 또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고 있었다.

북카페

그녀에게는 동네마다 북카페가 어디 있는지 찾는 습관이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거기에 맞게 머릿속을 리셋하고 새로운 생각들로 채워나가는 편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자주 이용하는 공간이라고. 그녀의 영감은 타인의 생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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