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김강우가 연기하는 매니저 우곤은 ‘찌라시’때문에 이뤄놓은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우곤은 소문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이른바 ‘증권가 정보지’라 불리는 그 찌라시의 세계로 뛰어든다. 각종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비밀 회의는 물론 사설 정보지가 완성되어 유포, 확산되는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며 초현실적이다. 영화의 원제가 <찌라시: 예언자들>이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는 우곤이 수많은 우리 시대의 예언자들을 만나고 겪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김강우는 일단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도대체 왜 필요 이상으로 찌라시에 집착하는 걸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도 싸웠다. ‘힘든 만큼 많이 얻었다’는 평범한 진리,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이 자리까지 KTX 타고 왔겠어? 인생 밑바닥부터 두 다리로 따악 버티고 오면서 터득한 거지.”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의 열혈 매니저 우곤(김강우)은 “형은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요?”라는 후배 매니저의 존경어린 질문에 의기양양하게 답한다. 우곤은 그야말로 ‘연예계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3년차’ 매니저다. “머리 꼴이 그게 뭐냐?”는 소속사 실장의 호통에도 “매니저들도 이렇게 하고 다녀야 ‘아, 저게 누구 매니저구나’ 딱 알아보죠. 그리고 매니저가 개성이 있어야 함께 다니는 연예인도 감각이 보통은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오히려 가르치려 든다. 적당히 ‘판’도 읽을 줄 알고, ‘한 몇년 더 고생하다가 내 회사 차리는’ 것이 꿈인 매니저다. 하지만 자신이 미는 배우는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고 자신의 현실 역시 그러하다. 아직은 좀더 굴러야 하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저 숨가쁘게 직진만 하며 살아온 그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위기다. 바로 ‘찌라시’다.
들어가면 다치는 세계
우곤은 자신을 믿고 오랜 시간 함께해온 여배우 미진(고원희)의 성공을 위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오래전 오디션에서 미진을 보는 순간 한눈에 스타가 될 것임을 직감했었다. “매니저는 ‘필’ 하나로 가는 것”이라는 게 우곤의 오랜 믿음이다. 하지만 소속사 실장은 “미진은 글렀다”고 얘기할뿐더러 “매니저 3년차가 사고 치기 딱 좋은 때”라며 우곤의 다혈질을 억누른다. 이후 우곤은 어떻게든 오디션이라도 받아보려고 방송국, 광고회사 가리지 않고 프로필을 내고 직접 의상협찬을 받으러 다닌다. 미진의 ‘가오’를 살려주기 위해 아는 형의 좋은 차를 빌리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올인’. 그러다보니 하나둘 인터넷 연예 기사에도 뜨기 시작하고 단막극 주연은 물론 단독 CF까지 찍게 된다. 그런데 이제 막 성공의 단맛을 느낄때쯤 ‘찌라시’가 뜬 것. 이미 TV드라마 주인공으로까지 캐스팅돼 대형 브로마이드까지 걸렸지만, 갑자기 윗선에서 ‘빼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이미 세상 다 아는 유부남, 재벌3세 같은 젊은 놈도 아닌 나이든 3선 의원 남정인(안성기)과의 대형 스캔들이 일파만파 퍼진 상태. 이른바 ‘스폰서’설에 휘말리며 우곤과 미진은 하루아침에 ‘제로’가 된다. 그리고 급기야 미진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다.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찌라시의 한줄 내용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된 우곤은 직접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나선다.
김강우는 <찌라시>에 대해 “한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되는 세계에 발붙인 얘기”라고 말한다. 미진의 죽음 이후 찌라시 유통업자인 박사장(정진영), 불법 도청 기술만큼은 최고인 백문(고창석)을 만나 찌라시가 제작, 유통, 소비되는 은밀한 세계를 알게 된다. “우곤은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얼굴이나 차림새만 보고는 진의를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인물들을 계속 만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나를 도와줄 사람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재빠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미묘한 순간의 변화들을 담아내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시간순으로 촬영하길 원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특히 <찌라시>처럼 야외 로케이션 촬영이 많은 영화는 더더욱 그렇다. “우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연기하는 신의 상대역이 몇 번째로 만나는 사람인지가 무척 중요하다. 짧은 시간 안에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 우곤의 융통성과 적응력이 시시각각 변하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점이 가장 아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배우로서 전체 그림을 그리며 그마저도 가볍게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찌라시>는 거의 실시간 추적극을 연상시킨다. 우곤은 내내 뛰어다니고 늘 흥분된 상태다. 영화 속 그는 잠시도 가만있는 법이 없다. 실제로 그는 “지난 몇년간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영화”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우곤은 계속 사람을 바꿔가며 누군가를 미행한다. 위험천만하게 자동차를 쫓아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맞기도 한다. 그러니까 매 장면 계속 숨이 차 있어야 했다. 촬영장에서 쉬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늘 그 상태여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긴장된 자세를 유지해야 하니까, 촬영 전 대기시간에도 전혀 쉬지 못한 영화였다. (웃음)” 그런 가운데 그가 주목해주길 당부하는 것은 우곤의 ‘감정선’이다. “찌라시라는 게 그렇듯이, 평생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맞닥뜨리면서 겪는 혼란이다. 게다가 우곤은 억울한 마음에 그 근원으로 가고자 했다가 상상 이상의 사건과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슈나 가십으로 <찌라시>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도 이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본질’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바로 우곤이 그랬던 것처럼.”
본격 ‘매니저’ 스릴러
<찌라시>의 우곤은 매니저를 ‘천직’이라 여기는 사람이다. <찌라시>를 두 가지 갈래로 구분한다면, 먼저 장르적으로는 ‘음모론’을 다루는 스릴러영화일 것이고, 두 번째는 ‘매니저’ 그 자체를 다룬 영화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언제나 함께하는 매니저가 있으니까, 어딘가 남다른 기분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카메론 크로의 <제리 맥과이어>(1996)나 이준익의 <라디오 스타>(2006)에서 본 것처럼, 혹자는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를 ‘부부’ 사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찌라시>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매니저를 대변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소속사인 나무엑터스의 대표 형(김종도 대표)도 자기 얘기 같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웃음) 보통 영화 속 매니저들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밖에 모르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악덕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찌라시>가 스릴러 장르이면서 어떤 스페셜리스트에 관한 영화라면, 바로 매니저가 그 중심에 있다.”
매니저라는 캐릭터의 흥미로움도 있지만, 최근 한국 영화계의 멀티 캐스팅 트렌드에 비춰보면 보기 드문 ‘원톱’영화라는 점도 흥미롭다. 오직 우곤 혼자서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고 부대끼는 구조다. 그래서 가장 궁금한 점은, 우곤이 도대체 왜 그토록 찌라시에 집착할까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 김강우는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 절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맨 처음 시나리오를 읽으며, 함께하던 여배우가 죽은 뒤 매니저가 왜 자기 목숨까지 걸면서 그런 위험한 일들을 헤쳐나가는지 의문이 들긴 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까지 할까, 나 스스로를 설득시켜야 했다.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미래의 관객까지 설득시킬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바로 내 옆의 매니저에게도 물어보고(웃음) 다른 배우나 매니저들하고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일이 있을 때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배우와 매니저 사이에 생기는 특별한 감정에는 동경이나 우애 혹은 이성적 감정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일단 너무 억울해서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웃음)”
마지막으로, 배우 김강우의 현재에 대해 물었다. <사이코메트리>와 <결혼전야>를 통해 그로서는 다소 아쉬웠던 지난 2013년, 변함없는 송강호는 물론이고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40대의 재발견’이 이뤄졌다. 남자배우로서 고맙기도 했지만 은근히 긴장되는 한해였던 것.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엄격한 자기관리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그 과정은 진정 고난의 연속이다. (웃음) 더구나 40이라는 숫자를 향해 달려가며 드는 느낌은, 무척 외롭다는 것이다. 옆에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있지만, 왠지 이전과는 달리 매번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사실 늘 불안하고 매번 잘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한다. 요즘 한국영화들이 참 좋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 안에서 내가 한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제 좀 침울해진다. 배우로서 나이가 든다는 건 갈수록 힘든 결정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예전에는 지금 이 작품이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나의 쉼표일까 아니면 터닝포인트일까, 그런 고민들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 관객에게 남겨지는 의미가 없는 영화라면 배우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도 덧붙인다. 어쩌면 그는 이제야 비로소 배우로서 진짜 성인식을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