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우(최성호)는 지금 위험한 존재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났지만 슬픔과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 없어 괴롭다. 헌우는 선배가 집을 비운 사이 그곳에서 며칠간 머물게 된다. 선배의 집 주변에는 개발 중인 산이 하나 있다. 선배는 떠나기 전에 그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는데, “송장을 치우기 싫다”는 것이 하나였고, 또 다른 하나는 “노루 사냥을 위해 산속에 쳐둔 덫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혼자 남은 헌우는 어머니의 유품을 태우는 나름의 의식을 치른 뒤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다음날 그는 뒷산에서 여자의 비명을 듣는다. 소리가 난 곳에는 여자(김진욱)가 노루 덫에 걸려 있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자살 유예기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죽음으로 끌어오는 인력이라면 노루 덫에 걸린 여자는 그를 죽음에서 밀어내는 척력이다. 적어도 여자가 그의 곁에 있는 동안에는 그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여자는 누군가에게 쫓긴다. 남자에게 어머니라는 그늘이 옅어지는 동시에 여자에게 다가오는 그림자는 점점 짙어진다. 빈집과 산은 어디에도 머물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제공된 곳이라는 점에서 일시적인 유토피아이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공간이다. 영화는 새로운 누군가를 우연히 떠맡게 되면서 내가 떠나보낸 누군가를 잊게 되는 과정이면서도, 그 새로운 누군가와의 관계 역시 일시적임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종교적이라면 종교적이다. 여기에서 신은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 같은 것이다.
‘레바논 감정’이라는 제목은 최정례의 동명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상한 제목처럼 이 영화는 말할 수 없는 관계와 감정을 그려본 뒤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묻는다. 장면 장면을 쌓아놓는 힘이나 기운이 만만치 않아 자기 세계가 분명한 장르영화 감독의 탄생을 예감하게 한다. 정영헌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기괴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