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어디 괜찮은 곰돌이 없나요?
2014-03-04
글 : 김정원 (자유기고가)
<겨울왕국>을 보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마시멜로를 떠올리다
<겨울왕국>

게이인 선배가 ‘베어 바’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거기에 가면 수많은 베어가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이번엔 어떤 베어가 들어왔나 눈을 빛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천국이 아닌가. 나도 데려가! 나도! 저기, 걔들은 여자한테는 전혀… 괜찮아! 보기만 해도 괜찮아, 상관없다고! 나는 흥분했다. 동그란 배와 동그란 얼굴, 짧고 포동포동한 팔과 다리, 작고 동그란 눈, 사전적인 의미는 ‘곰’이지만 나에게는 ‘곰돌이’로 자동 번역되는 그 단어, 베어. 그렇다, 나는 곰돌이처럼 생긴 남자를 좋아한다. 그런 남자와 연애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곰만 만났지,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겨울왕국>을 보고 올라프만 귀엽다고 하는 걸까, 왜 엘사가 떠난 북쪽 산에 혼자 남은 그는 돌아봐주지 않는 걸까. 남들은 엘사가 원전 다섯기의 에너지에 해당한다는 괴력을 발휘하여 성을 올리던 와중에 자투리로 떨어진 (눈사람치고는 매우 마른) 올라프에게 넋을 놓았다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올라프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확신했다, 그는 나의 사랑, 나의 마시멜로.

<고스트 버스터즈>

마시멜로는 <고스트 버스터즈>의 클라이맥스에서 마음속으로 마시멜로를 떠올리고 있던 유령 사냥단의 일원 댄 애크로이드 때문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마시멜로다, 그냥 마시멜로. 압도적인 덩치로 도시를 짓밟는 사랑스러운 칼로리 덩어리를 TV로 보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칼로리 걱정 없이 마음껏 초코파이를 먹어치우던 10대의 나는 빵 사이에 눌린 마시멜로 크림과 함께 녹아내렸다. (마시멜로는 실제로 크림이었다. 그 녀석 만드느라 면도 크림 50갤런이 들어갔다고.) 귀여워, 귀여워, 나는 어른이 되면 마시멜로 같은 남자를 만날 거야. 그딴 걸 꿈이라고 꾸고 앉아 있었다.

어찌어찌 어른이 되고 원하던 대학과 직장에 들어갔지만 나는 가장 오래되고 소박한 소원 하나를 이루지 못했다. 곰돌이는커녕 눕혀놓으면 인체 골격 모형을 형상화한 것과 같은 남자들만 만났던 것이다. 아쉬운 대로 곰을 만나기도 했지만 끝내 곰돌이는 찾지 못했다. 아니 한 마리 찾기는 했는데, 너는 내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라며 차였다. 이성애자 베어들은 마른 여자를 좋아했다. 이쯤에서 나의 외모가 궁금해질 수도 있겠는데, 내가 바로 곰돌이다. 얼굴도 동그랗고 배도 동그랗고, 어찌나 동글동글한지 어릴 적 별명이 당시 유행했던 바퀴가 커다란 청소기 이름을 따서 ‘동글이’였다(성격도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돌덩이도 쪼갤 정도로 모났다는 것이 나의 비극이다).

<19곰 테드>

그렇다면 곰과 곰돌이는 어떤 점이 다르단 말인가. 미묘하다. 개그맨 김준현(곰돌이)과 유민상(곰)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텐데. 유난히 머리 큰 사람이 많았던 대학 시절에 나는 숱한 닥터 슬럼프와 도라에몽과 ‘모여라 꿈동산’을 만났지만 진정한 곰돌이는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역시 진정한 사랑이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맞다, 진짜다, 진짜 곰돌이는 영화 속에 있었다. <19곰 테드>의 포스터를 보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저건 나를 위한 영화야. 말도 하고 걷기도 하고 19금 행위도 하는 곰돌이라니. 이건 비디오 속의 청순한 글래머와 침대에서 품고 자는 인형이 살아 돌아다니는 만화 <전영소녀>와 영화 <공기인형>에 해당하는 판타지였다. 테드야, 너 나한테 와라, 내가 술 사줄게.

마른 인간만 대접받는 세상에서 산 지 어언 3X년째다. 이성애자 베어도 나를 원하지 않고 동성애자 베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눈물을 머금고 고른 저칼로리 맥주를 마시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실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회원님, 배에 힘주세요! 배가 너무 나왔어! 방심하면 안 돼!” 호령을 들으며 필라테스를 한다. 나는 곰돌이를 좋아하는데, 곰돌이를 반기지 않는 이 세상에서, 토실토실한 동글이는 오늘도 힘겹게 체지방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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