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그 시대 홍콩의 공기
2014-03-05
글 : 김보연 (객원기자)
<홍콩의 연인들>, 부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3월7일부터 20일까지
<백발마녀전>

오는 3월7일(금)부터 20일(목)까지 부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홍콩의 연인들’이란 제목으로 80년대 이후 만들어진 홍콩영화 10편을 상영한다. 이번 기획전은 <연분>(황태래, 1984), <천장지구>(진목승, 1990), <백발마녀전>(우인태, 1993), <반생연>(허안화, 1997), <동몽기연> (진덕삼, 2005) 등 ‘멜로’라는 코드로 묶어낸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장국영, 장만옥, 주윤발, 유덕화, 오천련, 임청하, 매염방, 금성무 등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홍콩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당시 젊은이들의 고민과 관심사를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980년대는 홍콩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1960~70년대의 홍콩 영화계를 장철-호금전의 쇼브러더스 무협영화와 황매조 시대극이 주름잡았다면 70년대 말부터 ‘신랑조’(新浪潮)로 불리는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과거와 다른 영화문법과 함께 지금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도가 훗날 홍콩에서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이번 기획전의 상영작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황태래 감독의 <연분>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춘들의 연애담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으로, 장국영과 장만옥이 멋진 옷을 입고 근사한 양식을 즐기는 동시에 부모님께 야단을 맞고 혼전섹스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쇼브러더스가 제작한 이 작품은 젊은 세대의 달라진 생활상과 함께 당시 사회의 변화를 빠른 리듬으로 그려내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90년의 <천장지구>와 1992년의 <천장지구2>는 그 변화의 물길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각각 1편과 2편의 주인공인 유덕화와 곽부성은 모두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는 청춘이며 부모 세대와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두편 모두 오천련이 연기했다)을 만나 겨우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불안하고 폭력적이며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당시 관객은 갓 데뷔작을 선보인 21살의 진목승 감독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며 이들이 세상과 싸워 흘리는 피와 눈물에 깊이 공감했다.

<연분>

새로운 세대들이 시대의 변화와 불화를 겪는다는 문제인식은 1997년의 홍콩 반환을 즈음해 만들어진 영화들에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허안화 감독의 <반생연>이나 금성무가 출연한 <심동>(1999)은 현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들이 과거를 반복해서 돌아보며 위로받기 원하는 우울한 분위기의 영화들이다. 이들의 사랑이 하나같이 부모들에게 발목 잡히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어긋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즉 이 영화들은 멜로드라마를 통해 그 시대의 우울한 공기와 그 안에서 숨막혀하는 젊은이들의 고통을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은 관금붕 감독이 쇼브러더스에서 발표한 그의 데뷔작 <여인의 마음>(1985)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대를 앞서갔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이상한 가족 드라마는 주윤발의 코믹 연기와 함께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어떤 매끈한 마무리도 거부한 채 남녀간, 세대간, 계급간 갈등의 그림자를 불길하게 드리운다. 당시 28살의 신인감독이자 젊은이었던 관금붕이 바라본 홍콩 사람들은 그렇게 다들 어딘가 신경질적이고 공허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들은 모두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자세한 정보는 영화의전당 홈페이지(www.dureraum.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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