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은 소박하고 성실한 영화였다. 백수와 깡패의 색다른 연애 이야기는 취업 경쟁에 내몰린 청춘들의 얼굴을 비추며 적지 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탄탄한 짜임새는 물론이고 적은 예산 안에서 시도된 참신한 장면들이 즐거움과 함께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았다. 방송작가 출신으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조감독을 거쳐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데뷔한 김광식 감독이 이번에는 화려한 장르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을 들고 찾아왔다. 증권가의 사설 정보지, 속칭 ‘찌라시’의 세계에 발을 담근 한 매니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고리를 꿰뚫는 솜씨는 여전하다. 충무로의 기대주에서 우량주로 거듭난 김광식 감독을 만나 그 비결을 들어봤다.
-첫주 성적이 나쁘지 않다.
=개봉 전 예매율은 4위였다. 엄청 불안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장 구매 덕분에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 그러다 주말에는 또 경쟁작에 밀려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하고. 이번주가 지나봐야 추후 향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에 머물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줄 대중영화를 만든 거다 보니 매일 숫자로 평가받는 기분이다. 영화보다 스코어를 보는 게 더 긴장감이 있다. (웃음)
-전작 <내 깡패 같은 애인>에 비해 규모가 큰 만큼 부담감도 달랐을 텐데.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예산은 10억원 남짓이었고 이번에는 작게 잡아도 3배가 넘으니 당연히 다르다. 전작은 편집 때까지 배급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지원으로 영화를 찍은 거라 완성과 개봉이 목표였다. 막상 개봉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관에서 개봉했고 관객 반응이 좋아 행복했다. 반면 <찌라시>의 경우엔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리라는 야망으로 뛰어든 건 아니다. 그보단 차라리 재미있는 소재라는 점이 더 흥미를 끌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도 새로움은 있으되 한편으로는 낯선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공감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할 수 있는 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애초의 목표였다.
-하긴 ‘찌라시’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찌라시’라는 용어 자체가 비속어라서 처음에는 제목으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했다. 각색에 참여한 뒤 ‘예언자들’이란 제목을 새로 붙였는데 SF영화 같다며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소심하게 ‘찌라시: 예언자들’로 바꿨는데 끝날 때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너무 직접적이고 선정적인 것 같아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예언’이라는 말이 찌라시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우려가 있는 반면 ‘위험한 소문’은 모호한 정의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 부제로는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찌라시의 실체를 보여줬다는 의견부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지적한 영화라는 말까지 관객의 반응이 다양하다.
=물론 영화는 철학을 탐구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나 적어도 그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아니다. 사실 메시지는 전달하려고 할수록 그 기능에서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순수하게 ‘찌라시’라는 대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걸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우리 사회의 권력과 힘에 관계된 정보들이 돌아다니는 게 재밌었다.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현실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는 거지 고발이나 탐사를 목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
-재밌는 건 <내 깡패 같은 애인>도 ‘88만원 세대’의 취업난을 다룬 영화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말 그대로 ‘깡패같은 애인’과의 연애 이야기다. 다만 그들만의 사랑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 그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보여주겠어!’라는 야심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취업 문제는 그냥 그런 연애오락영화로 소비되는 게 싫어서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들어간 ‘밑그림’이었다. <찌라시>도 마찬가지다. 찌라시와 얽힌 정계, 재계, 연예계의 뒷모습이 자연스레 녹아들어갔지만 그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정보를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비판이라기보다는 관찰, 목적이라기보다는 효과에 가깝다.
-시나리오 초안에서 많이 바뀌었나.
=큰 틀에서 바뀐 건 두 가지다. 매니저와 스타의 관계, 그리고 찌라시에 관한 디테일한 설정들. 초안에서 두 사람은 철저히 경제적인 관계로, 매니저가 소문을 못 막으니 배우가 더 큰 기획사로 옮겨가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매니저가 찌라시 유통업자로 성공하는, <타짜>와 비슷한 무협지 구조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인간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영화에 참여했다. 두 번째는 찌라시 유통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이었는데, 첫 시나리오에서는 이러이러할 거라는 상상에 의존해 그린 부분이 많아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8개월가량 취재를 거쳐 그런 이음매의 빈틈을 메워갔다.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희망적인 시선이 있는 것같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면이라서 더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원하는 걸 투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영화 속 주인공이 우리 일상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면 좋겠다.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히어로를 보고 싶고, 그런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싶다. 사실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도 그런 건달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런 ‘일반인 히어로’가 어딘가 있을 수도 있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아 그런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반면 <내 깡패 같은 애인>이나 <찌라시>의 인물들이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건 아니다. 현실에 몸담고 있되 목표는 이상적인 인물들이랄까.
=정확히 그렇다. 때문에 핵심 인물들의 감정라인 빼고는 철저히 디테일에 집중한다. 가령 로맨틱 코미디 등의 장르영화를 보면 현실성 없는 세팅들이 많지 않나. 실업자인데 친구들이랑 함께 깔끔하고 좋은 집에서 살거나 고급스런 옷차림을 하는 것처럼. 나는 반대로 인물을 둘러싼 시공간은 굉장히 리얼하게 그리는 반면 인물이 나아가려는 방향은 다분히 영화적인, 말하자면 ‘현실인데 영화 같은 전개’를 선호하는 편이다.
-찌라시라는 게 실체가 없는 소문인 만큼 디테일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외려 재미있었다. 막상 취재를 해보니 사설 정보지라는 것 빼고는 다 허구더라. 앙상한 이야기였지만 틀이 확실해서 접근이 어렵진 않았다. 정보맨이라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직장인, 생활인이다. 찌라시 업자들도 전직 기자나 정보 관련 종사자들이 독립해서 차린 영세업, 생계형 개인 언론이고. 다들 생활 차원에서 먹고살려고 버둥거리는 거다.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다들 특별한 전문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환상을 품고 있지만 우리 사회 어느 영역이나 ‘밥벌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비슷하다. 그게 공감으로 이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매니저 우곤(김강우)이 찌라시 업자 사무실에 쳐들어갔을 때 사무실 직원인 번개와 벌이는 격투장면이 무척 재미있다. 추격 스릴러의 리듬으로 가다가 개그로 전환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다.
=상황이 심각하게 들어가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민망함이 있다. 수오 마사유키나 기타노 다케시 감독처럼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상황에서 유발되는 유머를 좋아한다. 찌라시 업자인 박 사장(정진영)이 악당이 아닌 만큼 첫 대면 상황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싶었다. 개그를 의식적으로 쓰진 않는 편이다. 디테일과 마찬가지로 웃음은 목적이라기보다는 완성도를 높여주는 밑그림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고 느끼나 보다.
-악의적인 정보가 먼저 퍼져나가는 등 찌라시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이 인터넷상 정보 유통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재밌다. 관객은 늘 의도 이상까지 나아간다. 차성주(박성웅)가 우곤의 손가락을 계속 부러뜨리는 걸 그런 식의 상징으로 보는 분들도 계시더라. 한편으론 인터넷의 긍정적인 힘에 쉽게 기댄 해결 방식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고발/탐사영화라면 무리수였을 테지만 장르적 재미 안에서 용인될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서 교차시키고 싶었던 건 ‘찌라시’라는 비밀정보를 독점하는 사람들과 정보를 대가 없이 나누는 대중의 모습이었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매니저가 스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매니저가 국가권력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결말일 수도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의미론적인 대비를 강조하고 싶었다.
-결말을 두고 호불호가 갈린다. 찌라시 회의로 시작해서 찌라시 회의로 끝나는 듯하다가 뒤에 다시 인물들의 에필로그가 붙는다. 쉽고 확실하게 설명해준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필요한 부분이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엔 이 영화 자체가 하나의 찌라시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앞뒤로 찌라시 업자들의 회의를 붙였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진짜일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가 진짜일까 혼란을 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에필로그에서 다시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다. 이게 사회고발영화라면 열린 결말로 갈 수도 있지만 대중적인 상업영화인 만큼 경쾌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비밀이 진실을 잊는 순간 그것은 찌라시가 된다”라고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다시 한번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찌라시는 나쁘다는 멘트를 반드시 해주고 싶었다. 예술적인 가치로서는 사족일 수 있지만 대중적인 영역에서는 선을 분명히 해주고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실의 디테일을 잡아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 <내 깡패 같은 애인> 중 면접장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정유미의 표정처럼, 불쑥 치고 들어오는 진실의 순간이 있다.
=진심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게 꼼꼼한 디테일이다. <찌라시>의 경우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믿어지지 않으면 순진한 이야기에 그칠 것 같아서 로케이션에 특히 더 신경을 썼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이 진짜 일하는 곳, 대기업 회장들이 진짜 골프 치는 곳, 그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의 사실감이 중요하다. 세트로 찍을 수도 있지만 분명 느낌이 다르다. 단순히 이야기와 사람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공간을 통해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 내가 영화적으로 힘주고 싶은 부분이다. 장면에 관한 한 내가 먼저 믿어야 한다. 인물을 영화적으로 설정하는 만큼 그외의 모든 요소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집착하는 편이다.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이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콘티가 그려지지 않는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평범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잡아나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눈에 띈 영화였다. <찌라시> 역시 빤한 장면도 다른 각도에서 잡아보고자 하는 욕심이 보였다.
=어휘의 문제랄까. 카메라가 펜이라고 가정했을 때 영화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어휘들이 있다. 그냥 클로즈업, 미디움숏으로 찍을 수도 있지만 어떤 어휘를 어떤 타이밍으로 쓰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표현할 때도 이런저런 어휘를 붙여보는 게 재미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쓰면서 카메라 어휘에 대한 고민이 더 줄어든 것 같다. 영화의 본질은 서사가 아니라 장면에 있다. 장면을 찍는 방식, 배치가 다채로울수록 기억에 남는 건 당연하다. 거창한 건 아니다. 가령 찜질방에서 우곤을 잡는 장면에서 한 시간 이상의 점프를 한컷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보여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가급적이면 동어반복 없이 어떤 새로운 표현을 할까를 고민한다. 그게 영화 찍는 재미다.
-차기작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새로운 게 좋다. 같은 테마, 같은 장르를 반복하고 싶진 않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아귀레, 신의 분노> 같은 몸의 영화다. 이야기는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전달 가능하다. 반드시 영화라야 하는 영화들이 좋다. 스토리나 인물에 기대지 않는 영화 덩어리. 장면 자체로 존경이 이는 순수한 감동. 좀더 경험을 쌓아서 보여주는 것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