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누군가가 죽었을 때 남겨진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떠나간 사람을 애도하고, 그리워하다가 그의 빈자리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상실감에 빠지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막내딸 천지(김향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시작된다. 남겨진 가족은 천지의 엄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 마트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던 현숙은 의젓하고 애교가 많았던 천지의 죽음으로 상심이 크지만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평소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몰라, 나 바빠, 끊는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만지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어느 날 만지는 천지의 친구들로부터 화연(김유정)이 천지와 가장 친했다는 얘기를 듣고 화연을 만난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가족은 몰랐던, 천지에게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한 감독이 연출한 <우아한 거짓말>이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감독의 전작 <완득이>(2011) 역시 김려령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531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바 있다. 전작이 그랬듯이 <우아한 거짓말>은 원작에 충실하다. 천지를 떠나보낸 가족이 살아가는 현재와 가족이 몰랐던 천지의 과거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니보다 더 성숙했던 천지를 괴롭힌 것이 무엇인지, 천지의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등 천지의 죽음 뒤에 가려져 있던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가족은 천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무신경했음을 반성한다.
장애, 다문화가정을 통해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이야기에 불어넣었던 전작처럼 이한 감독은 이 방면에 소질이 있다. 신파로 빠져들 위험이 있음에도 감독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이 개성이 있는 영화인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현재와 과거를 차례로 오가며 천지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이 이야기는 원작을 스크린에 그대로 펼쳐내지만 그 이상의 생동을 찾기가 힘들다. 천지의 가족, 친구 등 남아있는 사람들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볼 기회가 소설에는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기회를 끝내 흘려보내고 만다. 현숙, 만지 모녀의 옆집에 사는 공무원 고시생 ‘추상박’(유아인)은 서사가 헐거워질 때마다 등장해 관객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재주가 있는데, 이 매력적인 캐릭터만으로 서사의 한계를 가리기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