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시간의 틈을 메우는 영화들
2014-03-12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시차: 동시대 영화 특별전’, 3월11일부터 4월1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나 아렌트>
<5월 이후>

만일 예술의 양식을 ‘편차’라고 말한다면, 넓은 의미에서 그 다양성 속에는 시차 역시 포함될 것이다. 3월11일부터 4월1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멀티플렉스의 포화로 아쉽게 놓친 최신 영화들을 모아 ‘동시대 영화 특별전’을 개최한다. 최신 국내 개봉작과 미개봉작 중 높은 영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많이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을 모아 ‘시차’라는 타이틀로 한데 묶는다. 동시대의 다양한 작품들이 지닌 개성적인 편차를 통해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담론을 주고받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체 프로그램 중 16편은 국내 개봉작들이다. ‘바티칸’이란 무거운 소재를 우아하면서도 즐겁게 푼 난니 모레티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전하는 모호하고 세련된 우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 모데라토로 흘러가는 스릴러 <사이드 이펙트>를 비롯해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콩 호텔>과 브루노 뒤몽의 <까미유 끌로델>, 짐 자무시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등 동시대 거장들의 최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스프링 브레이커스>와 <킬링 소프틀리> <머드> 등도 포함돼 있으니 자세한 일정은 시간표를 참고하길 바란다(www.cinematheque.seoul.kr).

국내 미개봉작은 총 5편이다. 그중 ‘사운드’에 대해 특수한 관점을 지닌 영화 두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브라질의 중산층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네이버링 사운즈>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2년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한편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이웃집 개가 지속적으로 짖는 소리 때문에 고민하는 한 여인의 에피소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긴장감 있지만 굴곡이 없는, 세련된 형식의 스릴러가 펼쳐진다. 클레버 멘돈사 필로 감독은 일상생활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브라질 역사를 반영한 ‘계급 관계’에 주목한다. 불안하고 비인간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회를 지배하는 봉건적 제도의 잔재들이 삐져나온다. 한편 이탈리아의 낡은 녹음실을 배경으로 한 <버베리안 스튜디오>는 피와 살인이 등장하지 않는 데다 기괴한 코미디가 뒤섞인 실험적인 공포영화다. 영국 출신의 피터 스트릭랜드 감독은 이탈리안 호러 장르인 ‘지알로’를 오마주한다.

과거를 재현한 시대극 세편도 흥미롭다. <안개 속에서>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당했던 벨라루스를 배경으로 삼는다. 더이상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무도 무죄인 사람은 없다. 영화는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사를 최소화한다. 대신 사운드의 정적인 틈을 시각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메운다.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은 이 작품으로 2010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신작 <5월 이후>는 68혁명 이후의 ‘70년대 초반의 파리’가 배경인 자전적인 영화이다. 감독은 자신의 청년기 기억과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재현하면서, 급진적인 앙가주망(사회참여)과 개인적인 열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담는다. 아사야스 감독은 음악에도 ‘공간’을 주려 노력했다고 밝힌다. 덕분에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앤드루 부잘스키의 <컴퓨터 체스>는 진지한 분위기를 벗어난 모큐멘터리로, ‘80년대 인간과 컴퓨터간의 체스 대결’을 다루는 빈티지한 시대극이다. 감독은 시대의 색감을 살리기 위해 70년대 사용하던 흑백의 소니캠코더로 영화의 다수 장면을 촬영했다.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취재했던 한나 아렌트의 모습을 담은 <한나 아렌트>는 ‘특별 상영’으로 개봉 전 관객과 만난다.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은 철학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맥락에서 어긋남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완성했다. 너무나 평범한 아이히만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아렌트가 자신의 유명한 ‘생각하지 않는 죄’와 ‘악의 평범성’ 개념을 완성하는 과정을 영화는 세밀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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