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해외뉴스] 좁은 문
2014-03-1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여성의 위치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9편 중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은 <아메리칸 허슬> <그래비티> <필로미나의 기적> 단 세편뿐이다.” 여성주의 비평가로 잘 알려진 홀리 L. 데어의 지적이다. 이는 단지 영화제에서 여성의 수를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라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할리우드영화 속 여성의 역할과 비중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으로 보인다. 2012년에도 언론 비평가 애니타 사키시안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10편을 놓고 흥미로운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른바 ‘벡텔’ 검사. 영화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과 여성에 대한 묘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를 평가하는 테스트다. 그 결과 이 기준을 통과한 작품은 단 두편뿐이었다. 실제로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과 수상작만 대충 훑어봐도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영화와 TV 속 여성 캐릭터에 관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샌디에이고주립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할리우드는 지금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찾아볼 수 없는 여배우 기근에 빠졌다. 지난해 미국 내에서 제작된 주요 영화 100편 가운데 여배우가 주인공인 경우는 15%에 불과하다. 여성이 중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도 전체의 29%, 그나마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30%에 그쳤다. 여성과 남성 캐릭터 비중이 비교적 비슷했던 영화는 13% 정도다. 이 경우에도 여배우들의 수난은 그치지 않았다. 상대 남자배우에 비해 여자배우의 나이는 대체로 어렸는데 남자배우들이 40대 전후인 데 반해 여배우는 20, 30대에 집중돼 있었다. 극을 이끌어가는 쪽도 남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오랫동안 재능 있는 여배우 풀을 확보해왔다고 알려진 할리우드에서조차도 여자배우들이 극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할리우드의 문이 여배우들에게만 좁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영화현장에 몸담고 있는 여성과 이민자들이 받는 처우에 대해 관찰해온 UCLA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비해 영화산업이 여성 스탭들에게 더욱 공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방송용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의 남녀 주연 비중은 고르게 분배되어 있지만 영화쪽은 상황이 다르다는 말도 덧붙였다. 할리우드 영화감독 12분의 1명, 각본가는 3분의 1명만이 여성이다. 할리우드에서 제2의 캐스린 비글로, 제2의 케이트 블란쳇이 쉽게 탄생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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