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자본주의의 풍경 <트리쉬나>
2014-03-19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한올씩 벗겨졌다. 그녀의 존엄은 남자의 전근대적 욕망과 근대적 자본이 합쳐진 힘에 의해 천천히, 끝내는 송두리째 벗겨져 나갔다. 겉보기엔 현대적인 남자 같았다. 가난한 농가의 첫째딸 트리쉬나(프리다 핀토)는 농작물을 팔거나 근교 호텔에서 일하며 근근이 식구들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재벌 2세 제이(리즈 아메드)는 한량 친구들과 놀러다니다 트리쉬나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트리쉬나의 아버지는 차 사고로 몸져누워 돈을 벌 수 없고 제이의 아버지는 그녀를 고액 급여에 채용해준다. 트리쉬나의 집에 있는 것이라고는 사고 한번에 폐기처분된 지프차가 전부였지만, 제이 집안이 소유한 것은 특급 호텔과 그에 따른 권력이었다. 제이의 호텔에서 일하게 된 열아홉살 시골 처녀 트리쉬나는 엉겁결에 제이와 첫 관계를 맺는다.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쏟은 다음날 새벽, 그녀는 호텔을 박차고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마이클 윈터보텀은 토머스 하디의 소설 <더버빌가의 테스>(1891)를 현대 인도로 옮겨와 이 영화를 만들었다. 산업혁명 절정기 영국에서 산업화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도로 배경을 이동하면서 ‘나쁜 남자’는 한결 온화해졌지만,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인다. 테스의 자존을 짓밟은 두 남자는 트리쉬나를 끝없이 욕망하는 한 남자로 합쳐졌다. 트리쉬나와 제이는 스스로 서로를 선택한 것 같지만 영화는 그들의 선택 이전에 ‘원래 그랬던’ 자본주의의 풍경을 보여준다. 딸의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며 달아올라 있던 테스 부모의 안색이 <트리쉬나>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세상 이치를 알고 있다는 듯 풀죽어 있다.

1차, 2차, 3차 산업을 전전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문화산업을 동경하는 트리쉬나의 눈빛은 고도 압축성장 중인 개발국가들의 얼굴 한쪽이다. 그곳에서 개인의 존엄은 무시되고 착취된다. 다른 한쪽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돈과 권력을 물려받은 제이의 자기분열적인 표정이다. 트리쉬나에게 “너는 하녀, 처녀, 창녀 셋 다 해당된다”며 상대의 존재를 찢는 제이는 고용주, 애인, 착취자 셋 다 해당되는 분열된 영혼이다. 따라서 감독이 보여주는 빈부의 대물림이나 도농 격차와 같은 시대 풍경은, 이 영화의 옷이라기보다 몸을 이루는 뼈대다. 농촌 처녀들이 도시 공장과 식모로 스며들던 시절 김기영 감독이 <하녀>를 만들고 50년 뒤 임상수 감독이 이를 리메이크한 우리나라에서는 <더버빌가의 테스>와 <트리쉬나>의 변주에 익숙할 법하다. 다만 <인 디스 월드>(2002) 등에서 보인 윈터보텀 감독의 힘이 <트리쉬나>에서는 덜 느껴진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