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어떤 규칙에 의해 정해진다면 어떨까. 여기 그 몇 가지 규칙 중 하나를 알아낸 사람이 있다. 사설 도박장에서 고스톱을 치는 안 교수(김홍파)는 그날 나온 패의 조합에 따라 특정 사람이 무조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 규칙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 안 교수는 도박장에서 일하는 상이(이승준)와 함께 이 규칙을 검증하기 시작한다. 즉, 사기 도박을 벌여 의도적으로 특정 패를 나오게 한 뒤 그 사람이 정말 죽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그런데 거액의 도박빚을 진 상이는 이 규칙을 악용해 주위 사람들을 한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독특한 소재인 건 확실하다. <고스톱 살인>의 재미도 여기서 나온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김준권 감독은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 만에 기본적인 게임의 룰을 설명한 뒤 이를 가지고 변화무쌍한 활용 방법을 선보인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 역시 감독이 정한 게임의 규칙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고스톱의 결과에 따라 만들어진 주민등록번호에 의해 사람이 죽는다는 복잡한 듯 간단한 규칙은 결국 시간여행의 설정까지 건드리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간다.
이야기의 기본 설정이 이렇다보니 등장인물들이 많이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특히 생사의 규칙을 어느 정도 파악한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말 그대로 시체가 줄줄이 쌓여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영화가 ‘죽어도 괜찮은 사람’과 ‘죽으면 슬픈 사람’을 은근히 구분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조연들을 도구처럼 가져다 손쉽게 죽여버리는 장면들은 온전히 장르적 재미에만 몰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를 거침없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속도감은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적어도 이번 <고스톱 살인>은 마냥 재밌게 보기는 힘든 불편함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