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 <프라이버시>
2014-03-19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영국 버러마켓 부근에서 폭탄 테러로 12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의 용의자로 터키인 에두간이 지목되고 수사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에두간쪽의 변호를 맡았던 사이먼이 사망하고 사인은 자살로 결론난다. 마틴(에릭 바나)은 사이먼의 후임으로 사건을 맡는다.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특별변호인에는 마틴의 과거 연인이기도 했던 클로디아(레베카 홀)가 내정된다. 서로를 껄끄러워하며 사직을 고민하던 두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일을 받아들인다. 변호인과 특별변호인의 업무 지침상 두 사람의 사적인 접촉은 금지된다. 한편 수사를 진행하던 마틴은 사건의 배후에 국가정보국 MI5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버러마켓 주변의 CCTV 속 화면이 동시다발적으로 분할, 증폭되는 도입부가 흥미롭다. 이 장면은 보호받아야 할 개개인의 사적인 대화까지 세세하게 기록하지만, 정작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증거는 감춰버린다는 점에서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한다. 누가 나의 동료이고 누가 나의 적인지 분간하기 힘들어지는 주인공의 상황과도 연결된다. 영국이라는 배경을 한국으로 바꿔도 어색함이 없을 법한 스토리가 흥미를 끄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국가가 범인이다”라는 포스터 헤드 카피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법정 장면의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마틴과 클로디아의 러브 모드는 극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날수록 그들이 어딘가 허술해 보인다는 것은 극중 상황에의 몰입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관객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 영화는 심리 스릴러와 액션 스릴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그 둘을 놓쳐버리는데, 아쉬운 것은 전자를 놓쳐버린 것이다. 인물들의 고뇌와 매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단지 배우들의 찰나의 눈빛이나 배경음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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