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내셔널 무비’의 가능성을 보다
2014-03-27
글 : 김성훈
프랑스부터 말레이시아까지, <설국열차> 개봉한 9개국 배급 담당자들이 말하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아직도 개봉 중이다. 지난 2월27일에는 이탈리아에서 개봉했고, 독일, 중국,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의 개봉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북미 개봉일도 정해졌다. 하지만 <설국열차>가 지금까지 어디서 개봉해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씨네21>은 프랑스, 인도네시아, 홍콩, 타이,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일본, 말레이시아 등 <설국열차>가 현재까지 개봉했던 총 9개 나라의 배급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최근까지 이슈가 된 북미 편집권 문제와 <설국열차>를 전세계에 차례로 배급하고 있는 CJ의 분위기를 CJ엔터테인먼트 해외영업팀 김성은 팀장에게 물었다.

<설국열차>가 서울역을 떠난 지 반년 가까이 지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이 마지막 국내 상영이었다. 그동안 <설국열차>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순회하고 있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홍콩, 타이,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일본, 말레이시아를 차례로 돌아 최근의 이탈리아까지 총 10개국에서 관객을 만났다. 3월 중순부터는 중국, 독일, 베네룩스 3국을 찾는다. 그리고 많은 영화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북미(미국과 캐나다) 횡단은 초여름부터 시작된다. 3월6일 <버라이어티>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6월27일 북미에서 개봉한다”라고 알렸다. 아직 개봉일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영어권 국가들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속 기차처럼 <설국열차>의 엔진은 돌고, 또 돌고 있다. 한시도 멈추지 않은 채로 말이다.

현재까지 개봉했던 10개 국가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두고 CJ엔터테인먼트는 “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그중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모은 나라는 프랑스. 지난해 10월30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설국열차>는 올해 2월16일까지 약 3개월 동안 600만달러를 벌었다(위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국가별 상영 정보 참조할 것). 관객수로는 67만8천여명. <설국열차>의 프랑스 배급사인 와일드 사이드의 마뉘엘 쉬슈 대표는 “프랑스에서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편이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는 영화의 주제가 프랑스 관객에게 먹혔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자. 당장 우크라이나에서도 <설국열차>와 비슷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프랑스,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는 ‘기대만큼’

인도네시아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11개관에서 개봉해 8만3천여명을 동원했다. CJ엔터테인먼트의 직배 파트너사인 자이브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까닭에 인도네시아 최고의 체인망을 가진 21시네플렉스에서 상영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꽤 선전했다(<설국열차>는 자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이자 21시네플렉스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체인망을 가진 블리츠 메가플렉스에서만 상영됐다. 자이브가 배급하는 영화는 경쟁사인 21시네플렉스에서 상영하지 못한다). 자이브 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 총괄을 맡고 있는 루슬리 에디의 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종전의 기록은 5만8천여명을 불러모은 <미스터 고>였다.

코미디, 액션, 공포 장르가 강세인 베트남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23개관에서 상영해 3만4천여명을 불러모았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스타를 인수해 현지화 전략에 성공한 CJ CGV 베트남 이정국 배급 매니저는 “베트남 시장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처럼 분위기가 어두운 블록버스터가 실패하는 곳이다. <설국열차> 역시 내용이 진지하고 주제가 무거워 염려를 많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아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달리 홍콩, 필리핀, 대만, 일본은 여러 이유로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일단 홍콩과 필리핀은 “할리우드영화를 주로 소비하는 시장의 성격 때문에 <설국열차>가 큰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홍콩 배급사 골든 신의 펠릭스 창은 “핑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홍콩 관객은 홍콩영화와 할리우드영화를 좋아한다. <설국열차>가 북미 개봉 전에 홍콩에서 먼저 선보였던 까닭에 북미 개봉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필리핀 배급사인 MVP(multivisionphil)의 라제쉬는 “필리핀 관객이 알고 있는 아시안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오우삼과 리안 감독 정도다. 봉준호 감독을 알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만에서는 <설국열차>가 개봉했던 지난해 12월6일 당시 “<설국열차> 앞뒤로 샌드위치처럼 낀 경쟁작들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11월22일 개봉했던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와 “아무도 흥행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대만영화 <아름다움을 넘어서>(원제는 <看見台灣>, 영문 제목은 <Beyond Beauty: Taiwan from Above>. 11월1일 개봉한 이 영화는 무려 2억대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같은 날 맞붙었던 폴 워커의 신작 <아워스> 등 무려 세편이 <설국열차>를 가로막았다. 대만 배급사인 필름웨어의 제프리 첸은 “특히 폴 워커가 사망하면서 대만 관객이 <아워스>를 보러 극장에 몰려갔다”고 전했다.

날씨가 관객의 발목을 붙잡은 경우도 있다. 일본 배급사인 비터스엔드의 도모코 가게는 “영화 개봉일인 지난 2월7일, 45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13년 만에 내린 대설 경보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면서 관객이 극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날씨운이 따라주지 않았음에도 <설국열차>는 3월5일 82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일본 극장가에서 조용히 선전 중이다. 도모코 가게는 “최종 성적은 92만달러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다”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CJ엔터테인먼트 해외영업팀 김성은 팀장은 “특히 홍콩과 일본 성적이 아쉽긴 한데 그 정도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정리했다.

기대만큼 재미를 본 지역도, 그렇지 못한 지역도 있지만 전체적인 성적을 놓고 보면 <설국열차>는 “순항 중”이다. 국가마다 시장의 성격과 규모가 다르기에 배급사마다 마케팅 전략도, 배급전략도 조금씩 달랐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배급사 대부분이 “마케팅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가령 봉준호 감독이 틸다 스윈튼이나 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레드 카펫 행사에 참석한다거나, 감독의 인터뷰가 배우보다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감독이 인터넷 실시간 영상에 접속해 극장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CJ는 세계 각 지역의 배급 파트너를 선정하기 전에 스스로 질문을 했다. <설국열차>는 한국 감독이 만든 잉글리시영화인가, 아니면 감독의 국적과 상관없는 거대한 액션상업영화인가. 아트하우스영화인가, 아니면 블록버스터인가. 봉준호 감독을 내세울 것인가, 아니면 감출 것인가. 오랜 고민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4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회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영화를 단순한 액션상업영화라고 규정지을 순 없다”는 것이 CJ 김성은 팀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CJ는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프랑스의 와일드 사이드였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나홍진 감독의 <황해>,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 등 한국영화를 오랫동안 프랑스에 배급해온 회사다. 2012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만난 CJ와 와일드 사이드 두 회사는 협력하기로 했다. 봉준호 감독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는 게 필요하고 판단한 것도 그때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의 <설국열차> 무대인사. 영화제를 찾지 못한 봉준호 감독이 실시간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봉준호라는 이름의 힘

와일드 사이드 마뉘엘 쉬슈 대표는 “프랑스 관객이 <설국열차>를 좋아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출연진? 훌륭하지만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빅네임’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연기를 잘하는 배우긴 하지만 말이다”라며 “그보다 중요했던 건 봉준호 감독이다. 그가 프랑스 시장에서 사랑받는 감독이라는 사실이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주효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할리우드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고 <설국열차>의 마케팅 전략을 설명했다. 그는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앞으로 라이언 고슬링이나 벤 멘델슨 같은 세계 최고의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다. 혹시 아나, 나중에 벤 멘델슨이나 라이언 고슬링이 송강호나 하정우 같은 한국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지…”라고 덧붙였다. 흥행 성적이 좋든 안 좋든 9개 국가의 배급 담당자들은 “봉준호라는 한국 감독과 할리우드, 유럽에서 활동하는 A급 배우의 조합은 신선하다. 관객 역시 그 점을 흥미롭게 보는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

프랑스만큼 봉준호 감독을 알리는 데 열성적이었던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아예 봉준호 회고전까지 열었다. <설국열차> 개봉일로부터 일주일 전,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괴물>, 그리고 최근의 <마더>까지 감독의 전작이 상영됐다. 자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루슬리 에디는 “인도네시아의 20, 30대들은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한국의 장르영화를 보고 자랐다. 할리우드영화보다 훨씬 더 많이 볼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설국열차>가 ‘봉준호의 신작’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회고전을 열었다. 그를 잘 아는 관객에게 전작을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 그가 누군지 소개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의 젊은 영화감독과 프로듀서들이 회고전을 열심히 홍보한 덕분에 객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인지도가 낮은 대만과 베트남,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영화를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로 포장해 할리우드 배우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특히 <퍼스트 어벤져>(2011)와 <어벤져스>(2012)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했던 크리스 에반스가 두 나라에서 인기가 높았다. CGV베트남 이정국 배급 매니저는 “크리스 에반스의 출연작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렸고, 액션영화로서 <설국열차>의 상업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흥미로웠던 건 베트남 관객은 감독이나 배우보다 영화 속 눈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눈을 접할 기회가 없어 영화의 배경인 빙하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대만 배급사인 필름웨어 제프리 첸 역시 “캡틴 아메리카로 대만 관객에게 친숙한 크리스 에반스를 포함해 틸다 스윈튼, 존 허트 같은 할리우드 출연진으로 홍보했다”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공통적인 건 9개국 배급 담당자들이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설국열차>를 봉준호 감독과 “빙하기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탄 기차 안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SF영화의 설정, 그리고 “기차 액션영화”로서 상업적인 요소를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설국열차>는 북미 횡단을 앞두고 있다. 알려진 대로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영어권 국가들에 대한 배급권은 웨인스타인 컴퍼니(Weinstein Company)가 가지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웨인스파인 컴퍼니의 인디영화 레이블인 레이디어스-TWC(Radius-TWC)가 <설국열차>를 북미에 안착시킨다. 개봉이 다소 늦춰진 건 북미 개봉판 편집권 문제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하비 웨인스타인 대표가 “북미를 포함한 주요 영어권 지역에서 <설국열차>를 개봉할 경우, 한국 상영본에서 20분 이상 자른 버전으로 개봉시킬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편집권 문제가 불거져나왔다. “한국 상영 버전은 분위기가 무거운 SF영화니 미국 중서부 지역의 저소득층 관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일부 캐릭터 묘사와 지루한 이야기 전개를 삭제하는 대신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신과 스릴러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당시 하비 웨인스타인 대표의 설명이었다. “가위손”이라는 별명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닌 만큼 그는 과거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라든가 주성치의 <소림축구> 같은 아시아 지역의 영화를 수입해 원본과 다른 버전으로 북미 지역에 개봉시킨 바 있다. <설국열차>가 새로 편집된 채로 북미 지역에 개봉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북미의 많은 기자와 영화평론가 그리고 아시아 영화광들은 ‘반달리즘’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웨인스타인에 항의했다. 그런 정성이 고스란히 전달됐을까, 웨인스타인은 봉준호의 오리지널 편집본을 그대로 북미에서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알려진 대로 웨인스타인과의 편집권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정리가 됐다. 편집권 문제가 그닥 크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북미 지역에 개봉되지 않은 건 배급 전략에 따라 적절한 개봉 시기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북미로 간다

앞에서 밝힌 대로 <설국열차>의 북미 개봉일은 6월27일이다. 경쟁작은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 와이드릴리즈로 스크린을 싹 쓸어갈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와 달리 <설국열차>는 롤아웃 방식으로 개봉할 계획이다. 롤아웃은 첫주에 적은 숫자의 개봉관에서 시작해 관객 반응에 따라 스크린 수를 차차 늘려가는 방식이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첫주 5개 도시 9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으며 개봉 넷쨋주 총 275개관으로 확대 개봉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역시 11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2천개 이상의 스크린으로 확대 상영되기도 했다. <설국열차>의 첫주 개봉관 수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웨인스타인 역시 마케팅 전략으로 “봉준호 감독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설국열차>는 극장 개봉과 함께 VOD에서도 동시 서비스된다. 롤아웃 방식으로 개봉하는 중저예산 영화들이 종종 선택하는 방식이다. 집 근처에 <설국열차>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는 북미 관객은 VOD를 통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나머지 영어권 국가는 “올해 상반기 안에 개봉할 계획”이라고 하니 북미 개봉일을 전후로 조만간 정해질 것 같다. 어쨌거나 한국영화가 반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전세계를 차례로 돌며 선보인 건 <설국열차>가 처음이다. 재미있는 건 아직도 달릴 곳이 더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설국열차>의 세계 일주가 기대되는 이유다.

영화 리뷰가 큰 도움이 됐다

CJ엔터테인먼트 해외영업팀 김성은 팀장

-2년 전 <설국열차>의 첫 프로모션을 하기 위해 아메리칸필름마켓을 찾았을 때 막막했을 것 같다.
=최악의 경우, CJ가 영화의 제작비인 4천만달러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도 있어 절박한 심정으로 프로모션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의 주요 회사들의 관계자를 만나면서 돈도 중요하지만 봉준호 감독과 그의 작품을 잘 알고 있는 배급사와 파트너를 맺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필름마켓 이후 <설국열차>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 선판매됐다. 전세계 개봉을 준비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무엇이었나.
=영화의 리뷰였다. 봉준호 감독도, CJ도 영화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는 오피니언리더의 리뷰가 필요했다. 누가 가장 먼저 썼냐고? <버라이어티>의 수석 영화평론가이자 칸영화제 특별 자문위원인 스콧 파운더스. 다행스럽게도 스콧 파운더스가 쓴 <버라이어티>의 <설국열차> 리뷰는 정말 아름다웠다. 덕분에 전세계 영화기자들과 평론가들의 관심을 <설국열차>로 돌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10개국에서 개봉됐다. CJ는 결과에 대해 만족하나.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프랑스에서는 첫날, 첫주 성적이 중요한데 개봉일이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상영관이 꽉 찼던 기억이 난다. 홍콩이 아쉬웠다. 할리우드영화가 강세인 시장이라…. 폭설이 내린 일본과 정치적 상황으로 혼란스러웠던 타이에서는 선전한 셈이고.

-<사이트 앤드 사운드> 1월호에서 토니 레인즈가 웨인스타인의 <설국열차> 편집권 문제에 대해 크게 쓴 적이 있다. 북미 개봉이 늦춰진 건 이 편집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서인가.
=그렇지 않다. 여러 해외 언론에 기사화 된 것처럼 CJ와 웨인스타인간의 편집권 문제는 큰 게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에 봉준호 감독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개봉하기로 결정됐다. 다만, 적절한 개봉 시기를 찾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CJ엔터테인먼트가 <설국열차>의 해외 개봉을 통해 배우고 있는 건 무엇인가.
=2년 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팀원들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설국열차>는 코리안 무비도, 아메리칸 무비도 아니다. 인터내셔널 무비다”라고. 전세계에 배급망을 구축하고 있어 직접 배급이 가능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달리 CJ는 그게 불가능하다. 지역별 배급사와 파트너를 맺어 전세계에 차례로 영화를 배급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봉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여러 국제 영화제를 돌고, 세계 여러 지역에 개봉되면서 영화의 불씨를 계속 타오르게 할 수 있었던 건 모두의 노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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