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록스타’ 수잔나(줄리언 무어)와 영국 출신 사업가 빌(스티븐 쿠건)은 너무 다른 서로를 견디지 못해 이혼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6살 소녀 메이지(오나타 에이프릴)는 눈만 마주치면 욕을 퍼붓는 사이가 되어버린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양육권 소송마저 길어지면서 어느 쪽에도 정착할 수 없게 되어버린 메이지는 어쩔 수 없이 수잔나와 빌의 집을 오가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공연 준비로 정신없는 수잔나와 해외출장이 잦은 빌 대신 메이지를 돌보는 건 이들이 각각 재혼한 상대인 링컨(알렉산더 스카스가드)과 마고(사만다 벅)이다. 힘든 상황을 묵묵히 버텨오던 메이지는 어느새 ‘새아빠’ 링컨과 ‘새엄마’ 마고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헨리 제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은 제목이 말해주듯 메이지가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6살 소녀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종종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어른들이) 지어냈음이 너무도 뻔한 ‘동심 판타지’에 빠져 오히려 볼썽사나워지곤 하는데, 이 영화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시선의 균형감을 유지해간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시선이 억지스럽지 않다. 메이지는 수잔나와 빌이 벌이는 온갖 소동의 중심에 서 있지만, 감정으로 사건에 휘말리는 대신 아이답지 않은 모습으로 한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위치에 선다. 오히려 아이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여과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이들은 메이지를 둘러싼 어른들이다. 감독인 스콧 맥기히와 데이비드 시겔은 메이지의 대사를 최소화하고, 그 빈자리를 소녀가 바라보는 대상들로 꼼꼼하게 채워간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는 한줄의 쉬운 대사 대신 영화는 메이지의 시선 앞에 놓인 전깃줄에 걸린 연과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 시들어버린 장미꽃다발을 보여준다. 물론 이 시선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을 가늠하기 힘든 신비한 표정을 가진 오나타 에이프릴의 ‘얼굴’ 덕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철부지 록가수 역할을 노련하게 소화하는 줄리언 무어와 미국 TV시리즈 <트루 블러드>의 ‘19금 뱀파이어’ ,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즐겁다.
하지만 다소 급작스럽기도 하고, 어디서 무언가 빼먹은 것만 같은 영화의 후반부는 줄곧 이어오던 감정의 파동에 작은 혼란을 가져온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도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 결론에 자연스럽게 함께 도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보수적인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 가족이긴 하다지만, 신선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가족주의로 환원하려는 원심력에 발목을 잡힌 것만 같아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다.